저자(글) 장인수
1968년 충북 진천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에서 수학했다. 2003년 《시인세계》에 「돼지머리」 외 4편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유리창』, 『온순한 뿔』, 『교실, 소리 질러!』, 『적멸에 앉다』, 『천방지축 똥꼬발랄』, 산문집으로 『창의적 질문법』, 『거름 중에 제일 좋은 거름은 발걸음이야』, 『시가 나에게 툭툭 말을 건넨다』 등이 있다.
장인수 시인의 시는 "풀, 꽃, 소, 염소, 미꾸라지, 아버지의 언어가 넘치는 언어의 카니발”(기혁), "몸철학으로 소란하고 파닥거리는 시, 재기발랄한 몸의 시학”(장석주), "니체의 철학인 아모르 파티! 카르페 디엠의 시”(박제영), "생명성의 불꽃으로 가는 도화선”(오민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목차
Ⅰ 까세권에 산다
까세권에 산다 ______ 12
이게 웬 변고인고! ______ 14
극락 마사지 ______ 16
알몸의 구도자 ______ 18
헛된 눈싸움 ______ 20
하늘의 부름 ______ 22
신입회원 ______ 24
주먹의 발명 ______ 26
연둣빛의 출처 ______ 27
편의점 ______ 29
삼각김밥 ______ 31
양푼 해장라면 ______ 32
새벽 김밥 ______ 33
나는 칼칼한 동태찌개입니다 ______ 34
새벽의 달고 쓴 맛 ______ 35
짜장 웃음 ______ 37
Ⅱ 슬픔이 나를 꺼내 입는다
인생의 계약금 ______ 40
단풍 속으로 사라졌다 ______ 42
인생의 떨켜 ______ 43
모란시장에 가면 입맛을 버린다 ______ 45
찜부럭 ______ 46
낫날 커피 ______ 48
울음 뜨내기 ______ 49
추위의 감각 ______ 51
개 짖는 소리에 오는 가을 ______ 52
참깨는 소리로 된 음식 ______ 53
하류 ______ 55
화부가 되어 ______ 56
인생은 채소와 같다 ______ 57
춤은 우주의 떨림 ______ 58
슬픔이 나를 꺼내 입는다 ______ 60
뻥쿠르트 ______ 62
Ⅲ 아내를 바꿔 입었다
만져 봐 ______ 66
더 활짝 벌려 보세요 ______ 68
개굴 보살님 ______ 70
아내를 바꿔 입었다 ______ 72
숭어처럼 뛰는 심장 ______ 74
뚝! 눈물이 멈췄다 ______ 75
이천만 원으로 활개를 치리라 ______ 77
해루질 ______ 78
귓불을 녹이면서 ______ 79
3쾌 ______ 80
삶의 무게를 저울질하다 ______ 81
유쾌한 다이아몬드 ______ 82
복사꽃이 만개했다 ______ 83
봄에 꽃이 피는 이유 ______ 84
백합꽃 ______ 86
꽃의 예의 ______ 87
거품의 위로 ______ 89
등살을 나누지 않은 여자 ______ 91
Ⅳ 깊이에의 강요
깊이에의 강요 ______ 94
총알 립스틱 ______ 96
안개의 흐느낌 ______ 98
어루만지는 손길 ______ 100
지리산 밑의 허무 ______ 101
구멍 블루스 ______ 103
가을은 몇 그램일까? ______ 104
가을은 얼마나 밝은 빛일까? ______ 106
흘림골 ______ 107
잡초행전 ______ 108
거돈사지를 밟는다 ______ 109
풀의 입적 ______ 111
도마… 아미타불… ______ 112
백로의 매서운 수행 ______ 114
동백이 붉은 이유 ______ 115
새 떼의 혈액 ______ 116
눈썹은 왜 있는가? ______ 118
하늘의 혈청 ______ 120
┃해설┃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 명예교수)
저 밝은 몸의 길, 생명성의 분출 ______ 121
출판사서평
슬픔 속에서도 삶의 찬란한 순간을 발견하는 시
생명성의 불꽃으로 가는 도화선, 저 밝은 몸의 길, 생명성의 분출
장인수 시인의 신작 시집 『슬픔이 나를 꺼내 입는다』가 출간되었다. 『슬픔이 나를 꺼내 입는다』는 시인이 일상 속에서 발견한 철학적 사유와 감각적 표현이 가득 담긴 작품이다. 장인수 시인은 독창적인 시세계를 펼쳐왔으며, 이번 시집에서도 시인 특유의 감각적 언어와 철학적 깊이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해설을 맡은 오민석 문학평론가는 장인수 시인의 시가 "생명성의 불꽃으로 가는 도화선”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이는 장인수 시인이 슬픔 속에서도 삶의 찬란한 순간을 발견하고, 이를 시로 표현하는 능력을 잘 보여줬기 때문이다. 또, 장인수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목련나무의 하얀 울음”을 통해 인생의 덧없음 속에서도 찬란한 찰나가 있음을 강조하며,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찾아낼 수 있는 아름다움을 전하고자 한다.
누구에게나 관념과 감각이 존재한다. 관념과 감각 사이의 거리에 따라 사유와 정념의 좌표가 생겨난다. 관념의 축으로 아주 멀리 간 주체들을 우리는 관념주의자라고 부른다. 관념주의자들은 감각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감각은 일시적이고 변덕스러운 좌표이다. 감각의 축으로 멀리 간 사람들을 우리는 감각주의자라고 부른다. 이들은 관념보다 몸의 신호들을 훨씬 더 신뢰한다. 이들에게 진실은 생각되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관념과 감각이 항상 대척적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관념적 감각 혹은 감각적 관념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도 있다. 장인수의 사유와 정념은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그는 머릿속의 관념을 감각의 촉수로 끌어내리고, 감각 기관에 포착된 느낌을 관념의 창고에 저장한다. 그에게 관념은 감각의 힘으로 분명해지고, 감각은 관념의 형태로 신뢰의 대상이 된다. 그는 사유와 느낌이 활력 없는 관념의 상태에 있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며, 동시에 그것들이 감각의 순간성에 휘발되는 것을 싫어한다.
천고마비의 하늘,
시퍼렇다
비소 같다
청산가리 천 배
한 방울 마시면 즉사할 것 같은 독극물의 시퍼런 하늘
아청색 밤이 되었다
반달이 찰랑찰랑 떴다
퉁퉁 부은 젖
젖물이 뚝뚝 흐른다
젖 빠는 소리 요란하다
쭉쭉쭉
삶이 곧 죽음이구나
─「하늘의 혈청」 전문
그의 시에서 삶과 죽음은 관념의 상태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비소’처럼 ‘시퍼런 하늘’의 색깔로 오고, ‘젖물’처럼 ‘뚝뚝’ 흐르며 온다. 감각의 배에 실린 관념이 ‘독극물’과 ‘젖 빠는 소리’로 올 때, 원관념tenor과 보조관념vehicle의 거리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에게 죽음과 삶은 관념이 아니라 감각적 관념으로, 감각이 아니라 관념적 감각으로 온다. 그에게 관념과 감각은 마치 종이의 앞뒷면처럼 분리 불가능하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렇게 관념과 감각 사이의 거리를 좁히게 할까. 쉽게 말하면, 그는 생각과 느낌이 따로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에게 느낌 없는 생각은 가짜이며, 생각 없는 느낌은 허위이다. 그가 볼 때, 감각─관념이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붙어 하나가 될 때, 진실성의 수위가 높아진다. 장인수에게 감각은 관념의 등을 가질 때 사상이 되고, 관념은 감각의 배를 가질 때 실체가 된다.
장인수의 관념은 늘 몸의 언어로 구현된다. 그는 몸에 오는 자극을 통해 관념을 얻고, 관념을 다시 몸으로 보내 실체화한다. 그는 자기 몸을 건드리는 자극을 중시한다. 그의 사유는 음식을 먹을 때, 아름다운 것을 볼 때, 근육을 움직여 힘든 노동을 할 때, 최대로 활성화된다. 관념은 그 자체로 그에게 잘 다가오지 않는다. 그는 감각의 경험을 통하여 관념을 확인한다. 그는 몸의 경험에서 정직과 진실, 실체와 기쁨, 그리고 유머를 발견한다. 감각계는 그에게 즐겁고 빛나는 해방구이다.
드넓은 뻘밭에
랜턴을 비추며
손금의 애정선처럼 갯골에 패인 물길
낙지의 빨판을 닮으리라
먹물빛으로 철썩이는 수평선
밀려갔다가 밀려오는 파도 소리처럼
당신과 평생을 함께하리라
서로의 유두에 점등을 하고
돌 틈에서 해삼을 발견하듯
옷고름을 더듬고
사랑의 뻘밭을 해루질하리라
멀리 비렁길 섬마을의
젖가슴 반달 긷는 집에 돌아가
밀려오는 밀물의
파도 소리처럼 끓어 넘치리라
─「해루질」 전문
장인수의 시들은 어둡고 우울한 관념의 골방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바람과 햇빛과 비와 눈물과 땀방울이 마구 뒤섞이는, 밝은 몸의 길에서 생산된다. 장인수는 몸이 빠진 깨달음을 인정하지 않으며, 감각─경험에 의해 체감되지 않는 관념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는 인지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관념을 감각 기관의 경험을 통해 발효시키고 단련하고 정련한다. 그의 인식은 실천으로 검증된 이론처럼 단단하다. 그는 이질적인 것들을 마구 박치기시킨다. 그 기발한 발상들이 부딪힐 때 폭발하는 별처럼 생명성이 분출한다. 그의 시들은 생명성의 불꽃으로 가는 도화선이다. 그것들은 타오르며 경계를 넘고 터지며 더 큰 터짐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