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다의 시의적절, 그 일곱번째 이야기!
시인 황인찬이 매일매일 그러모은
7월의, 7월에 의한, 7월을 위한
단 한 권의 읽을거리
동시대 가장 아름다운 감각으로 시를 쓰는 이라 할 때 주저없이 꼽을 이름, 황인찬 시인이 시의적절 시리즈의 일곱번째 주자를 맡았습니다. 7월, ‘여름’의 시를 꼽으라 할 때 가장 먼저 그 이름 떠올리는 것 또한 응당했을 터입니다. 현대문학상을 수상할 적에 황인숙 시인이 익히 "시들이 전부 미쳤구나 싶게 근사하다” 평한 바 있음에, 이토록 근사하고 아름다운 시의 근간에 정말로 ‘시에 미친 시인’ 황인찬의 쓰기가 있었음을 알게 하는 책입니다. 7월 1일부터 31일까지, 시뿐 아니라 에세이도 있습니다만, 아무려나 그 어느 하루 시를 생각함 없이 지나는 날 없더라는 거지요. 시에 있어서만큼은 언제나 여름이구나 합니다. 왕성하여 한창이고 뜨겁고도 무성합니다.
저자(글) 황인찬
2010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구관조 씻기기』 『희지의 세계』 『사랑을 위한 되풀이』 『여기까지가 미래입니다』 『이걸 내 마음이라고 하자』, 그림책 『내가 예쁘다고?』 『백살이 되면』, 산문집 『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이 있다. 집에 들인 식물이 너무 많아져서 곤란해하는 중이다.
목차
작가의 말 이 여름이 다시 돌아올 것이므로 7
7월 1일 에세이 여름의 오리들아 하천의 오리들아 13
7월 2일 에세이 반바지는 언제부터 여름은 그때부터 21
7월 3일 시 여름의 빛 27
7월 4일 에세이 시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기 31
7월 5일 시 고백 이야기 41
7월 6일 에세이 어떤 검시관 45
7월 7일 시 이름 이야기 57
7월 8일 에세이 골목에는 개가 서 있고 61
7월 9일 에세이 이수명 시인께 67
7월 10일 시 부푸는 빵들처럼 77
7월 11일 에세이 나의 모범은 나의 미워하는 것, 나의 취미는 나의 부끄러운 것 81
7월 12일 시 생각 멈추기 99
7월 13일 에세이 공작 바라보기 103
7월 14일 에세이 언제나 시에는 현관이 있고 107
7월 15일 시 어깨에 기대어 잠든 이의 머리를 밀어내지 못함 113
7월 16일 시 비밀은 없다 117
7월 17일 에세이 법 앞에서 121
7월 18일 시 인생 사진 127
7월 19일 에세이 문학 공동체의 선 131
7월 20일 시 괴물 이야기 147
7월 21일 에세이 다시 태어난다 말할까 151
7월 22일 시 애프터 레코드 159
7월 23일 에세이 보라매공원 163
7월 24일 에세이 산악회의 눈부신 주말처럼 명징하고, 선배의 애정 어린 조언처럼 하염없는 171
7월 25일 에세이 #not_only_you_and_me 175
7월 26일 시 귀거래사 189
7월 27일 에세이 말하지 않으면 슬프지도 않지만 193
7월 28일 에세이 시간을 달리지는 못하겠지만 205
7월 29일 에세이 거칠고 사악한 노인은 될 수 없지만 213
7월 30일 시 미래의 책 231
7월 31일 에세이 미래를 상상할 수 있도록 237
책속으로
시라는 것이 모든 사람을 위해 쓰이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시만이 갖는 특별한 의미와 감각을 이해하는 사람들만의 작은 공동체가 시의 세계에는 있는 것입니다. 다만 저는 그전까지 그것이 굉장히 내밀하고 비밀스러운, 그리고 일방적인 일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시인의 문장을 읽고 그것을 받아들이며 육화시켜나가는 과정은 저의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끔, 어떤 순간의 시는 서로 직접 주고받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소리 내어 읽고 그것을 듣는 경험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것이 꼭 낭독회에서만 이뤄지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가까운 이에게 시를 읽어주거나 그것을 듣는 일도 분명 특별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꼭 행이나 연을 맞춰 읽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저 자신의 흡을 따라 자연스럽게 읽는 것이야말로 그 시를 제일 잘 읽는 법일 테니까요.
앞으로도 때로 사람들은 제게 시를 어떻게 읽느냐 묻겠지요. 그러면 저는 마찬가지로 눈으로 읽는 것이라 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말을 덧붙일 수도 있겠습니다.
같이 읽어요. 소리를 내면서요.
_7월 4일 「시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기」, 39~40쪽
그 이야기들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엔들리스 에이트’다. 이름 그대로 끝나지 않는 팔월에 대한 이야기로, 여름방학이 끝나는 것에 아쉬움을 느낀 하루히가 무의식중에 여름을 무한히 반복시켜버리는 것이 그 내용이다. 하루히가 느낀 아쉬움이란 아직 한 번도 친구들과 함께 방학 숙제를 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 결국 일만오천 번을 넘는 반복 끝에 세계의 이상을 알아차린 ‘쿈’이 모두와 함께 방학 숙제를 하자고 제안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이야기 자체는 다소 전형적인 ‘루프물’(서브컬처에서 주로 나타나는 서사 유형으로, 어떤 이유로 일정한 기간을 반복할 수 있게 된 주인공이 그 반복을 통해 목표를 이루거나 어려움을 극복할 방법을 찾아가는, ‘게임 오버’와 ‘재도전’이 설정된 게임 감각의 이야기)이지만, 작은 추억을 위해 세계를 멈춰버리는 이 이야기의 과격함을 나는 좋아했다. 여기에는 일상을 거부하고 성장을 지연시키며 차라리 세계를 중단(파괴)해버린다는 급격한 낙차에서 오는 뒤틀린 카타르시스 같은 것이 있다. 혹은 자기 파괴의 감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사실 파괴되는 것은 세계가 아니라 자기일 뿐이니까. 신이 되어버린다는 것은 자신을 버린다는 이야기 아닌가.
_7월 11일 「나의 모범은 나의 미워하는 것, 나의 취미는 나의 부끄러운 것」, 86~87쪽
증명사진을 제출하셔야 한다고 해서 사진관에 갔네 옛날 사람들은 사진을 찍으면 거기 영혼이 담긴다고 믿었으나 찍힌 것은 아무것도 없었네 그런데도 플래시가 자꾸 터지고 너무 눈이 부셔서 눈물이 자꾸 흘렀네
나무에 앉은 새들은 조용히 잠들어 있네 아무리 다가가도 깨지를 않았네 죽은 것처럼 너무 좋아서 깨기 싫은 꿈을 꾸는 것처럼 텅 빈 스튜디오가 찍힌 사진 하나를 손에 쥐고 걸었네 사람들은 이런 것을 인생이라고 불렀네
_7월 18일 「인생 사진」, 128~129쪽
말하지 않으면 슬프지 않다. 그러나 말한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말한다. 그것이 요새 나의 삶과 시쓰기의 태도다. 김종삼과 같이 숭고하고 고결한 언어를 다룰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 될 테지만, 지금과 같은 시대에 그런 언어를 구사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지기도 할뿐더러, 조금은 거짓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나는 그저 말하고자 한다. 숭고하지도 않고, 고결하지도 않게. 무엇인가를 은폐하거나 숨기려 하지 않고, 그저 있는 것을 드러낼 뿐인. 창백하고 간결한 언어가 아니라, 다소 엉망진창이어도, 조금은 슬퍼지더라도 기어코 말해버리는 것. 나를 말로 뒤덮는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해 말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진짜로 말해보는 것. 그것이 진정 가능할는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이렇게 말해버렸기에, 그게 사실이 되리라 믿어볼 따름이다.
_7월 27일 「말하지 않으면 슬프지도 않지만」, 203쪽
이제 너에게 진실을 말해줄게
지금 마주잡은 두 손이 한 권의 책이 되는 거야
거기 적힌 일은 앞으로 모두 다 일어날 거고
그 책의 가장 첫 줄에는 사랑이라고 적혀 있지
그다음에 적히는 건 무슨 일이든 좋을 거야 시시한 일도 괜찮고, 놀라운 일도 좋겠지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해
그 책에는 기쁨이 가득할 거고
마지막에는 두 사람은 오래도록 행복했다고 커다랗게 아주 커다랗게 적혀 있을 거야
_7월 30일 「미래의 책」, 2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