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문학 분야에서 각기 40년 이상 내공을 쌓은 시인 이달균, 사진가 손묵광이 의기투합한 역작으로, 천년의 얼이 스민 한국의 석탑을 사진과 시조로 재해석해 그 진면목을 색다른 시각으로 조명하는 『탑』. 2년여에 걸쳐 우리 땅 곳곳에 산재한 탑들을 만나고 영감을 공유한 뒤 각자의 방식으로 탑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사진가는 자연과 어우러진 가장 극적인 순간의 탑을 앵글에 담았고, 시인은 탑에 얽힌 숱한 사연과 역사를 전통의 시가인 시조로 노래했다.
국보와 보물 68기, 지방 문화재 1기, 비지정 문화재 1기 등 모두 70기의 탑을 소개한다. 백제 무왕 때 세워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석탑인 익산 미륵사지 석탑부터 조선 후기에 중건된 산청 대원사 다층석탑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기억하고 보존해야 할, 죽기 전에 꼭 만나야 할 시대의 걸작들을 지역별로 엮었다.
백제, 신라, 통일신라, 고려, 조선 등 조성 시기별로 탑들이 어떤 특징을 보이는지, 탑의 양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한눈에 비교해볼 수 있어 더욱 흥미롭다. 탑을 지칭하는 세부 명칭이나 학술 용어를 알지 못해도 탑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데 조금도 어려움이 없도록 구성했다. |
저자 : 이달균
이달균 시인은 1957년 경남 함안에서 출생하여 1987년 시집 《南海行》과 《지평》으로 문단활동을 시작했으며, 1995년 《시조시학》 신인상 당선으로 시조 창작을 병행해왔다. ‘사라예보 윈터 페스티벌’ 한국 대표로 참가했으며 (사)한국시조시인협회 부이사장으로 있다. 시집으로 《열도의 등뼈》 외 7권과 창비 6인 시조집 《갈잎 흔드는 여섯 악장 칸타타》, 시조선집 《퇴화론자의 고백》, 영화에세이집 《영화, 포장마차에서의 즐거운 수다》가 있다. 중앙일보시조대상 및 신인상, 이호우·이영도 시조문학상, 조운문학상, 경남문학상, 성파시조문학상, 경상남도문화상, 마산시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그는 천년의 얼이 스민 탑과 700년 전통을 가진 시조의 운명적 고리를 느끼고 사진가와 영감을 공유해 탑에 깃든 역사와 사연을 시조에 오롯이 담아냈다. |
사진가의 말 시인의 말
1부 경기, 강원 - 옛 절집 흔적 없어도 탑은 절을 지킨다 안성 봉업사지 오층석탑 하남 동사지 삼층석탑과 오층석탑 강릉 신복사지 삼층석탑 양양 낙산사 칠층석탑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원주 거돈사지 삼층석탑 원주 흥법사지 삼층석탑 인제 봉정암 오층석탑 철원 도피안사 삼층석탑 평창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홍천 괘석리 사사자 삼층석탑
2부 경북 - 어찌 홀로 섰느냐고 묻지 마시라 경주 감은사지 동·서삼층석탑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경주 불국사 다보탑 경주 장항리 서오층석탑 경주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구미 낙산리 삼층석탑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 달성 대견사지 삼층석탑 문경 봉암사 삼층석탑 성주 법수사지 삼층석탑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영주 부석사 삼층석탑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 의성 관덕리 삼층석탑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
3부 경남 - 선 채로 천년을 살면 무엇이 보일까 밀양 만어사 삼층석탑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 산청 단속사지 동·서삼층석탑 산청 대원사 다층석탑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산청 법계사 삼층석탑 양산 통도사 봉발탑 의령 보천사지 삼층석탑 진주 묘엄사지 삼층석탑 창녕 술정리 동삼층석탑 함양 벽송사 삼층석탑 함양 승안사지 삼층석탑 합천 영암사지 삼층석탑 합천 청량사 삼층석탑
4부 충청 - 거기 절이 있었다 한 왕조가 있었다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 당진 안국사지 석탑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 영동 영국사 망탑봉 삼층석탑 제천 사자빈신사지 사사자 구층석탑 제천 장락동 칠층모전석탑 청양 서정리 구층석탑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5부 전라, 제주 - 기다림이 길어지면 돌에도 뿌리가 난다 곡성 가곡리 오층석탑 구례 연곡사 삼층석탑 구례 화엄사 서오층석탑 김제 금산사 육각다층석탑 남원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 담양 남산리 오층석탑 영암 월출산 삼층석탑 익산 미륵사지 석탑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정읍 은선리 삼층석탑 정읍 천곡사지 칠층석탑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삼층석탑 제주 불탑사 오층석탑
◎ 책에 수록된 문화재 현황 |
천년을 살고도 쓸쓸히 잊혀가는 우리 탑에 숨결을 불어넣다
탑은 불교와 함께 인도에서 전래되었지만 이후 불교사상에 우리의 정신문화, 그리고 한 시대의 문화예술이 집약되며 미(美)의 결정체가 되었다. 또한 왕조의 흥망과 전쟁의 참상을 목도하고 풍찬노숙의 세월을 견디며 이 땅을 지켜온 역사의 증인이기도 하다. 부장품도 다 내어주고 빈 가슴으로 깊은 침묵에 잠겨 있지만 탑이 품은 사연은 깊고도 유장하다. 창원에서 활동 중인 손묵광 사진가와 이달균 시인은 각각 사진과 문학 분야에서 40년 이상 내공을 쌓은 작가들로서,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탑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사진가는 탑과 자연이 어우러진 가장 아름다운 한순간을 앵글에 담았고, 시인은 탑에 얽힌 사연과 역사를 전통의 시가인 시조로 노래했다.
손묵광 사진가는 문화재로 지정된 200여 기의 탑을 촬영하기 위해 지난 2년간 5만 km를 누볐으니 그 거리가 자그마치 지구 한 바퀴에 이른다. 하나의 탑을 찍기 위해 서너 번 답사는 예사였고, 인적 없는 고요한 때를 기다리며 차 안에서 밤을 지새운 날도 부지기수였다. 돌의 질감을 깊이 있게 표현하기 위해 흑백사진으로 작업했는데, 천편일률적 구도로 찍어낸 안내 도판 같은 사진이 아니라 작가정신과 상상력으로 일찍이 본 적 없는 색다른 탑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달균 시인은 사진가와 함께, 혹은 혼자서 탑을 답사할 때마다 한 편의 시조를 남겼고,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해설을 덧붙여 탑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그래서 책장을 넘기면 탑의 조형미는 물론이고 탑이 품은 사연과 옛사람들의 간절한 염원까지 읽힌다. 한 장의 사진에 마음이 흔들리고, 한 편의 시조에 마음 깊숙한 곳까지 울림이 전해진다. 그렇게 두 작가가 만들어준 만남의 장에서 탑을 마주하고 있으면 탑이 차가운 돌덩어리가 아니라 영혼을 지닌 무념무상의 인격체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선 채로 천년을 살면 무엇이 보일까”
일찍이 탑이 있는 곳에 절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만날 수 있는 탑들은 꼭 절집에만 있지 않다. 흔적으로만 남은 옛 절터를 홀로 지키고 섰거나, 논밭 한가운데 또는 오르기도 벅찬 산꼭대기에 우뚝 서서 지난 역사를 침묵으로 증언한다. 백제와 신라 때부터 고려, 조선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바람 잘 날 없었던 세월이다. 원형을 거의 간직한 탑도 있지만 온전한 모습을 짐작하기 힘들 만큼 훼손된 탑도 많다. 제 모습을 잃어버린 탑들은 또한 그 자체로 역사가 주는 아픈 교훈을 상기시킨다.
이 책은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탑 68기와 지방 문화재 1기, 비지정 문화재 1기까지 총 70기의 탑을 소개한다. 백제 무왕 때 세워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석탑인 익산 미륵사지 석탑부터 조선 후기에 중건된 산청 대원사 다층석탑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기억하고 보존해야 할, 죽기 전에 꼭 만나야 할 시대의 걸작들을 지역별로 엮었다. 백제, 신라, 통일신라, 고려, 조선 등 조성 시기별로 탑들이 어떤 특징을 보이는지, 탑의 양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한눈에 비교해볼 수 있어 더욱 흥미롭다. 탑을 지칭하는 세부 명칭이나 학술 용어를 알지 못해도 탑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데 조금도 어려움이 없다.
"버려진 날들이 서럽거든 내게 오라”
손묵광 사진가가 기록한 탑들은 저마다 다른 얼굴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산천이 깨어나는 여명 속에서 웅장한 위용을 드러내거나, 자욱한 안개를 온몸에 두르고 신비감을 자아낸다. 천지간에 흩날리는 낙엽을 무심히 지켜보는 탑도 있고, 세찬 비를 온몸으로 맞고 선 탑도 있다. 절 마당에서 고요히 내리는 눈을 맞고 있는 탑은 들뜬 마음을 가라앉힌다. 어떤 탑은 든든하고, 어떤 탑은 애틋하며, 또 어떤 탑은 웅장한 위용으로 가슴 벅차게 한다. 이렇듯 사진가는 탑을 감싸고 흐르는 사계를 우리 앞에 생생히 되살리며 현장감을 더한다.
오래전 이 땅에 탑을 쌓은 이들은 염원했을 것이다. 나라와 백성이 두루 평안하기를, 그리고 모두가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 피안에 이르기를. 그래서 "탑은 돌로 지은 것이 아니라 간절함으로 쌓아 올린 마음”이라고 이달균 시인은 말했다. 정성과 기원이 층층이 쌓여 이루어진 이 탑으로부터, 이 무념무상의 존재로부터 시인은 지극한 위로를 받는다. 우리들 속마음이야 끓든 말든 탑은 언제나처럼 말이 없지만, 탑이 있는 풍경 속에서 시인이 그러했듯 우리 또한 탑을 마주하는 동안 마음의 모가 조금씩 깎여가길 기대해본다. 듣고 싶지 않은 말도, 잊고 싶은 이름도 탑 앞에서라면 모두 씻고 지울 수 있을 것만 같다.
탑은 말한다. "버려진 날들이 서럽거든 내게 오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