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산, 흙, 생명과 사람의 향기
지리산 귀농일기
1987년, 진주교도소에서 문익환 목사를 만나 사회운동에 뛰어든 환경운동가가 있었다. 짐 자전거 뒷좌석에 어린 아들을 태운 채 ‘타는 목마름으로’를 목이 터져라 불렀던 그. 어느 날 지리산에서 낡은 빈집 한 채를 만났다. 집주인이 빚에 쫓겨 야반도주를 했다던 집. 마루가 다 썩어 내려앉았고, 마당엔 덩굴만이 우거져 있고, 유리창은 깨어진 채로 방치되어 있던 집. 고개를 돌리는데 지리산이 성큼, 그의 눈 속으로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그걸 본 순간 그는 결심했다. 이 집에 자리 잡고 살겠노라고.
그리고 그, 김석봉은 벌써 13년째 지리산에서 살고 있다. 음식 공부를 하는 아내와 서울의 회사생활을 접고 내려온 아들, 그리고 민박 손님으로 만나 연을 맺은 며느리와 그 사이 태어난 손녀까지 오순도순 다섯 식구와 함께 하루하루를 충실히 보내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근처 유정란 농장에서 받아온 닭 열 마리,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 바둑이와 고미, 행운이, 꽃분이, 거위 덤벙이와 새데기, 마당에서 돌보는 길냥이들 예삐와 회색이, 코점이, 아롱이와 다롱이, 까망이와 막둥이 등……. 여러 생명이 함께 어우러져 지내는 지리산의 생활은 느긋할 것 같으면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정신없이 바쁜가 하면 또 잠시 일손을 놓고 숨 돌릴 틈이 문득문득 찾아오기도 한다.
『뽐낼 것 없는 삶, 숨길 것 없는 삶』은 제목 그대로 소박한 지리산 농부의 솔직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풍작을 이룬 고구마로 물물교환을 하여 생필품을 잔뜩 장만한 이야기, 도무지 이득이 나지 않는 쌀농사를 포기한 이야기, 두 이웃과 함께 다래 순을 따러 가서 점심을 나눠먹은 이야기, 철창에 갇힌 강아지를 구출하여 맘씨 좋은 이웃에게 보내준 이야기 등……. 물 좋고 공기 좋은 지리산 아래서 살아가는 일상을 진솔한 마음을 그득그득 담아 기록한 『뽐낼 것 없는 삶, 숨길 것 없는 삶』이, 현대인들에게 깊은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 목차
추천사
들어가며 괭이를 장만할 때의 그 두근거림으로
여는 일기 산촌에서의 나를 다시 돌아보았다
제1장 밭이랑에 묻어보는 허튼 인생
살랑살랑 봄바람 속 밭을 일구다
전복양식장의 유혹
찌릿찌릿 아린 손가락을 주무르면서
애꿎은 마음에 비는 내리고
기적을 부른 고구마 혁명
마침내 고추농사로 돈맛을 보다
쌀농사를 버리며
결혼기념일에 날품을 팔러 나가버렸다
내 밭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제2장 가까이 산다고 이웃은 아니건만
무엇이 김장김치의 맛을 만드는가
겨울, 경로당 가는 길은 좀 녹았으려나
하나둘 떠나는 이웃들
화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폼 나게 살고 싶었던 내 꿈은
봄날, 다래 순을 따다
살아갈수록 미워해야 할 사람이 늘었다
김 씨를 만나러 요양원 가는 길
제3장 아내는 또 찹쌀을 담갔다
서로를 보배롭게 여기면서
새 주방가구를 장만하면서
아내는 또 찹쌀을 담갔다
쓸쓸한 외출,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
외갓집처럼 친정집처럼 그렇게
봄바람 맞으며 봄 소풍 갈거나
무심한 지아비, 무심한 아버지
세상에서 가장 장가 잘 든 사람
시아비의 품격이란 무엇일까
요즘에 시는 좀 쓰나
제4장 새가 되어 날아간 바둑이
이렇게 하루를 또 보내었다
꽃분이가 사라졌다
수탉이 우는 새벽이 있다는 것은
이 세상에 꽃이 피는 이유
저 생명들에 마음을 열어보시라
고구마밭에 남몰래 숨겨둔 애환
그들의 거룩하고 따뜻한 마음
제5장 내 삶의 가장 빛나는 시간에
다시, 기차여행을 꿈꾸다
이 가련한 일중독자야
버려진 전등 앞에 서서
좁쌀 한 톨에 담긴 피 땀 눈물, 그리고 사랑
내 삶의 가장 빛나는 시간에
그동안 나의 세상은 무정했네
나이와 함께 몸도 저물기 시작했다
다시 새 봄을 기다리며
나는 언제나 고향이 그립다
숨길 것 없는 가벼운 삶
대신 맺는 말 고향이 멀지 않음을 일깨워주는 나무처럼
■ 출판사서평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귀농을 통해 얻은 것과 잃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저자 김석봉은 이렇게 답한다. 얻은 것은 사람과 시간이라고. 그동안 자신은 사람을 한길로 걸어가는 ‘동지’, 그 길을 거부하고 외면하는 ‘남’, 그리고 우리에게 저항하는 ‘적’으로 나눠서 보고 있었다고. 늘 ‘동지’와 함께 있고자 했으며 ‘적’에게는 항상 대척점에 서 있으려 했고 ‘남’의 존재는 잊고 살았다고. 그동안, 자신의 세상은 무정했노라고.
내가 해낼 수 있는 만큼의 땅을 일구며 산다는 것
하지만 보잘 것 없는 산골 농부로 살면서 그는 여러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다시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갑자기 찾아와 정든 이야기를 하룻밤 나누고 돌아가는 단골손님, 올 때마다 선물을 그득히 안고 친정집 방문하듯 한 해에도 몇 번씩 찾아오는 가족손님, 편치 않은 몸이지만 마을 이웃의 병문안을 가기 위해 몇 시간 거리에 있는 병원을 찾아가는 이웃 주민들…….
전부 지리산으로 내려와 살기로 결심했을 때는 얻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너무나 많은 것을 얻었기에 그는 큰 욕심을 내려 하지 않는다. 지금보다 조금 더 풍족한 생활을 꿈꾸며 전복양식장에 나가볼까, 고추농사를 좀 더 늘려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나마 하지만, 결국 저자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자신이 해낼 수 있는 만큼의 땅을 일구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새롭게 만난 모든 생명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것. 그것뿐.
소슬히 내리는 장맛비를 보며 그는 이렇게 말한다. 뽐낼 것 없는 삶이었으나 숨길 것 없는 삶이었으니 더 가벼워지는 것 같다고. 지금 이 순간이, 좋은 날이라고.
■ 저자소개
저자 : 김석봉
1957년 경남 하동 옥종 농가에서 태어났다. 민주화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던 시기 교도관으로 유월항쟁을 맞이하였고, 1987년 진주교도소에서 문익환 목사를 만나 사회운동에 뛰어들었다. 진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공동의장을 거쳐 2009년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로 활동했다. 녹색당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했고, 2012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을 맡았다. 2007년 경남 함양군 지리산 기슭으로 귀농하여 적지 않은 농사를 일구고 있다. 아내와 아들내외와 손녀까지 3대 다섯 식구가 모여 산다. 경남작가회의 회원으로 틈틈이 시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