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군사독재의 총칼에도 굴하지 않고 80년대를 멋지게 살아온
익명 민중들의 희노애락(希怒愛樂) 이야기를 엮은 8개 단편 모음집이다.
다양한 계층의 주인공을 등장시켜 각자가 처한 어려운 현실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그렸으며, 80년대를 평범한 민중의 시각에서 바라본 현실을 보여준다.
■ 목차
제1편 멋쟁이 우리형,1985년 노동무크지 <청춘> 창간호 게재 4
동생 대학 뒷바라지를 하는 동우형은 늘 일만한다. 공장에서 같이 일을 하는 후배들은 열악한 근로조건에 뒷전인 동우형이 맘에 안든다.
제2편 난 노동자다, 1985년 <민중문화> 게재 22
가리봉 오거리에서 시위가 벌어진다. 친구는 시위대열에 합류하는데 나는 어떻게 하나.
제3편 나발부는 KBS, 1986년 <민중문화> 게재 28
군사독재 권력은 칼라텔레비젼과 스포츠 그리고 선정적인 볼거리를 통해 민중들을 혹세무민하고 있다.
제4편 우린 들러리가 아니야, 1986년 <민중문화> 게재 39
조만간 헐릴지 모를 판자촌에 사는 오누이 언니는 동생이 세계적인 육상선수를 꿈꾸는 게 안타깝기만 하다.
제5편 부처님 어디 계실까, 1986년 <민중불교> 게재 46
사람들은 부처님을 모신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요지경이다. 부처님은 이런 세상을 왜 내버려둘까?
제6편 언니 같이 가, 1986년 노동무크지<청춘>3집 게재 52
생산직에서 일하는 영선이는 사무직 직장으로 옮기길 원한다. 하지만 함께 지내는 언니들이 마냥 좋다.
제7편 하늘아래 첫동네, 1987년 <만화신문> 게재 71
달동네 강제철거가 시작된다. 동네사람들은 대책본부를 만들었지만 벌써 기가 죽어있다. 주인공은 힘을 모아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제8편 쑥스러운 이야기, 1987년 <만화신문> 게재 87
여주는 지금 노동자로 살지만 평생 노동자로 살고싶지 않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순박하고 어리숙한 게 평생 노동자로 살 것같아 불만이다.
■ 작업하던 그 시절을 생각하며 -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을 꿈꾸며 그린 만화들 99
■ 에세이/한국사회에서 ‘노동문제’를 다룬 만화들 - 어제와 오늘 104
■ 출판사서평
■ 작업하던 그 시절을 생각하며...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을 꿈꾸며 그린 만화들
이 책에 실린 만화들은 1985년서부터 1987년 사이에 그린 단편만화들이다.
단편 ‘난 노동자다’, ‘우린 들러리가 아니야’, ‘나발부는 KBS’는 반합법단체 민중문화운동협의회 기관지 ’민중문화‘에 실린 만화이다. ’민중문화‘는 민중문화운동협의회(약칭 민문협)가 창립되면서 매월 발간했는데, 매번 내가 그린 만화를 실었다. 하지만 지금 구할 수가 없다. 그나마 복사를 해둔 만화 3편만이 남았을 뿐이다. 내가 그린 모든 만화 원본은 거의 전부 분실했다. 만화도 ‘예술’이란 생각을 안했다. 그냥 휴지처럼 필요할 때 쓰고 버리는 선전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예술을 한다거나 작가가 된다는 것을 꿈꿔본 적이 없다. 대학시절 대중집회에서 본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는 노동조합을 만들려 한다는 이유로 회사로부터 똥물을 뒤집어쓰고 해고를 당해야 했는데, 이런 불평등한 세상에서 작가를 꿈꾼다는 건 위선이라고 생각했다. 대학 4학년때 대한전선 노동조합 만화슬라이드를 제작하면서 나의 그림 기술이 노동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했고 만화를 그리기로 결심한 계기가 되었다. 그 당시 만화는 예술 취급을 하지 않았다.
단편 ‘멋쟁이 우리형’과 ‘언니! 같이 가!’ 노동무크지 ‘청춘’ 창간호와 2집에 실었다. 발행처가 합법적인 ‘공동체’ 출판사인지라 원고 저자명을 표기하는 게 신뢰도를 높인다고 보고 가명으로 ‘장영수’라고 썼다. ‘청춘’ 편집팀은 비밀모임이어야 했다. 노출이 되면 안기부 등에 의해 탄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민문협에 매일 출근을 하는 나는 저녁이나 주말을 이용해 편집모임을 가졌고, 주변에서 내가 그 일을 하는 줄 모르게 해야 했다. ‘멋쟁이 우리형’ 19페이지 만화를 스토리부터 펜선, 먹칠까지 토요일 밤샘하여 일요일 하루 만에 다 그린 것으로 기억한다. 잘 그린다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노동자가 만화 속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것이 중요하고, 또 만화 속 내용처럼 실제 노동현장에서 근로조건을 개선하려는 일상적인 투쟁들이 많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단편‘부처님 어디 계실까’는 반합법단체인 민중불교운동연합 기관지 ‘민중불교’에서 청탁이 들어와 그려준 만화이다. 당시에 나는 민문협에서 제작부장이란 직책을 맡고 있었는데, 인쇄소를 드나들면서 유인물 등 온갖 선전물을 만드는 게 내 일이었다. 또 여러 재야운동단체들의 선전물들을 만드는데 협조를 하곤 했다. 선전그림이 필요하면 여기저기서 찾아왔다. 내가 있을 때 찾아오면 바로 즉석에서 필요한 그림을 그려줬다. 마치 내가 그림 그리는 기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연합전선 격인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의 기관지 ‘민중의 소리’ 편집은 늘 내가 했다. 편집을 할 고정된 사무실도 없다. 마찬가지로 노출이 되면 안되기에 비밀리에 이 집 저 집 전전하면서 편집을 했다.
단편 ‘하늘아래 첫동네’와 ‘쑥스러운 이야기’는 기독노동자총연맹(약칭 기노련)에서 발행하는 ‘만화신문’에 실린 만화이다. ‘하늘아래 첫동네’는 사당동 달동네 철거현장을 취재하고 그린 만화이고, ‘쑥스러운 이야기’는 당시 친하게 지냈던 송도수 작가가 글을 썼다. 사실 ‘만화신문’ 편집팀은 ‘기노련’과는 관련이 없다. 단지 ‘기노련’을 울타리 또는 보호막으로 활용한 셈이다.
그 당시 나는 나의역할을 노동운동 외곽에서 노동현장을 지원하는 선전조직을 꾸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노동자를 위한 만화를 그리려는 후배들을 묶고 이리저리 소개도 받아 편집팀을 꾸린 다음, ‘기노련’ 사무실을 찾아갔다. 당시 노동현장 외곽의 여러 민중교회들은 노동자들의 모임공간으로 역할이 컸다. 만화신문의 보급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를 한 것이다. 거기서 당시 이영식 사무국장을 만났는데 ‘기노련’을 보호막으로 두는 것에 흔쾌하게 허락을 받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선전팀을 둔다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만큼 당시 군사독재권력에 비판적인 지식인과 대학생들은 노동자와 농민들의 정치력이 강화되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언제 발생할지 모를 탄압을 감당하려 했던 것이다. 만화신문은 이름 그대로 만화를 많이 실었는데 주로 후배들에게 지면을 배치했다. 실전에 부딪히는 것이 가장 실력을 키우는 방법으로 봤다. 한달에 한번씩 8호까지 나왔다.
여기에 실린 만화들은 공동창작이란 특성을 갖고 있다.
콘티를 짜고 그림을 그리는 작화과정은 내가 했지만, 이야기를 준비하는 과정은 다분히 머리를 맛 대는 과정이다. 평소 토론을 중요시 했는데, 자본주의가 낳은 병폐에 맞서 대안을 찾으려 노력했다. 계급이 없는 세상, 모든 관계가 민주적일 수 있는 평등한 세상, 업신여김을 당하는 노동자와 농민, 기층민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에 대해 얘기했다. 그런 세상이 되려면 현재 무엇을 할 것인가.
우선 예술의 개인성을 극복하는 것에 주목했다. 예술에서 ‘개인성의 강조’는 누구나 예술을 할 수 있는 건강한 토양을 차단시키고, 예술을 상품화시키는 출발점으로 본 것이다.
또 창작과정을 공동체문화의 회복과정으로 바라보았다. 폭력적인 군사독재정권에 맞서려면 민주주의 문화가 확산 되어야 한다. 활발한 토론이 가능한 공간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토론을 활발하게 하려면, 토론방법으로 ‘공동그림 그리기’ 등 공동체문화를 형성케 할 다양한 방법을 개발한다. 또 지식인 예술인들이 노동자 농민들과 함께 ‘문화적 협동’ 과정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1980년대 익명으로 그려진 ‘민중만화’들은 엄청나게 많다.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불법단체’에서 제작된 수많은 선전물에는 ‘민중만화’가 그려져 있다. 그 이면에는 민중만화를 그린 수많은 작가들이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이유는 80년대 당시 필요한 시대적 사회적 역할을 한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도 ‘그때 그시절’ 특수한 상황에서 특수한 목적으로 그려진 ‘민중만화’를 다시 들추어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군사독재정권이 무너졌다고 평등한 세상이 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불평등한 사회인 것이고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은 요원한 일처럼 다가온다. 80년대 ‘민중문화운동’과 ‘민중미술운동’은 당시 지식인들이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라고 선언만 하고 실천하려 했다가 동구권 사회주의가 몰락을 하면서 흐지부지된 느낌이다. ‘민중’이란 단어조차 구시대유물처럼 다가온다.
80년대 중반 어느 미술평론가에 의해 이러한 ‘새로운 미술운동’을 ‘민중미술’로 이름지었다. 하지만 ‘민중미술’은 군사독재가 막을 내리면서 힘을 잃게 된다. 94년 민족미술협의회에서 ‘80년대 민족민중미술역사전’에 대한 평가토론회를 가졌는데, 지금까지 활동한 저항미술의 내용은 ‘민중미술이 아니라 군사독재투쟁이었다’고 정리한다.
민족문학운동계열에서 만화를 거론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 민중문학, 노동문학계열도 마찬가지다. 가장 노동문학적인 만화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희한한 일이다. 게다가 한국 만화의 역사에서조차 ‘민중만화’를 주목하는 글을 보지 못했다. 한국만화사를 다룬 책이 3권이나 되지만 모두 ‘80년대 민중만화들이 있었다’ 정도로 간략하게 약술할 뿐이다.
다시 케케묵은 ‘민중만화’를 꺼낸다.
- 작가 후기에서
■ 저자소개
저자 : 장진영
홍익미대 대학시절부터 노동단체와 재야운동단체의 여러 선전물에 ‘민중만화’를 그렸다.
1990년 합법적인 ‘주간노동자신문’이 창간되면서, 신문에 장편시대극화 ‘누가 나를 이 길로 가라하지 않았네’(1990)와 ‘나선’(1992) 등을 연재했다.
1995년 귀농을 하여 농촌생활을 그린 만화책 ‘삽 한 자루 달랑 들고’, ‘무논에 개구리 울고’, ‘건달농부의 집 짓는 이야기’, ‘어절씨구! 열두 달 일과 놀이’ 등을 냈다.
또 뒤늦게 공부를 하여 박사학위논문 ‘한국만화문화의 생성과 수용과정 연구’ 등 여러 논문을 발표했다.
2020년 현재 상명대학교 디지털만화영상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