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형사사건 전문 변호사가 쓴 범죄소설
이 소설의 주인공 파티앙스 포르트푀는 프랑스 법무부 소속 아랍어 통번역사다. 그녀는 법원에서 일하지만 사회보장도 연금도 받지 못하는 불법노동자 신세다. 파티앙스는 법을 지키지 않는 법정의 아이러니한 현실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두 딸의 교육비, 어머니의 요양 병원 입원비를 대느라 뼈 빠지게 일해야 한다. 그녀에게 환멸을 불러일으키는 건 그뿐만이 아니다. 프랑스 사회에 만연한 각종 차별 또한 그녀를 분노하게 한다. 불법노동자 및 이민자 문제, 일자리 문제, 노인 부양 문제, 인종·성차별 문제 등 현대 프랑스의 여러 사회문제들을 보여주는 이 소설에서 형사사건 전문 변호사인 작가 안네로르 케르의 경력은 빛을 발한다. 작가가 변호사로서 사건들을 다루며 습득했을 세세하고 다양한 정보들과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이 신랄하고 유머러스한 입담과 함께 이야기에 몰입도와 재미를 더해준다.
감시자는 누가 감시할 것인가?
파티앙스는 아랍인 범죄자들의 통역 일을 하면서 한편으론 그들에 대한 연민을 잃지 않는다. 그들은 ‘돈이 모든 것’인 사회의 약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극도로 가난하며 배운 게 거의 없는 사람들, 존재하지 않는 엘도라도를 찾아 고향을 떠났다가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자잘한 뒷거래나 보잘것없는 도둑질로 내몰린 불쌍한 이주 노동자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간적으로 호감이 느껴지는 마약 딜러(그의 어머니는 파티앙스의 엄마가 입원해 있는 요양 병원의 간호조무사다)의 통화 내용을 도청 및 번역하게 된 파티앙스는, 얼떨결에 경찰의 체포 계획을 일러주고 어마어마한 양의 대마초가 숨겨져 있는 곳을 알게 된다. "감시자는 누가 감시할 것인가? 아무도 없다!” 그녀는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버린 프랑스의 마약 거래 실상 속에서 망설임도 죄책감도 없이 다량의 대마초를 빼돌린다. 그 후 부패한 마약 단속국과 어수룩한 조무래기 딜러들을 이중으로 골탕 먹이는 파티앙스의 통쾌한 활약상이 펼쳐진다!
끝없는 여름을 찾아서
파티앙스의 어릴 적 꿈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불꽃놀이 수집가’였다. 물체의 색깔을 매우 민감하게 느끼는 그녀에게 색색의 불꽃놀이는 황홀경 그 자체다. 불꽃놀이가 여름 밤하늘에만 펼쳐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것을 쫓아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일은 곧 ‘끝없는 여름’ 속에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불법 마약 딜러계의 거물이 된 파티앙스는 드디어 자신만의 ‘끝없는 여름’을 시작하려 하는데……. 파티앙스의 끝없는 여름은 어떻게 전개될까? 그녀는 끝없는 여름을 거머쥘 수 있을까?
■ 목차
1. 돈은 모든 것이다
2. 말하라, 그대는 무엇을 보았는가?
3. 겁대가리 없는 유대인 여자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4. 한눈파는 카멜레온은 파리를 모으지 못한다
5. 한 시간 후에 너는 또 배가 고플 것이다
6. 말로 밥을 지을 수는 없다
* 맘보
** 옮긴이의 말
■ 출판사서평
책 속에서
사기꾼이었던 우리 부모는 본능적으로 돈을 사랑했다. (……) 돈은 모든 것이다. 뭐든 팔 준비가 되어 있는 세상에서 살 수 있는 모든 것의 응축물이다. 그것은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이며, 모든 인간을 모이게 하는 바벨탑 이전의 언어다. ─p.7
이어 나는 일도 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일……. 어떤 악의에 찬 실체에 의해 ‘귀하’라는 총칭 바깥으로 쫓겨나기 전까지 나는 일이라는 걸 몸소 해본 적이 없었다. 온갖 종류의 사기에 관한 전문 지식과 아랍어 박사학위 말고는 세상에 내놓을 게 아무것도 없던 터라, 나는 법정 통번역사가 되었다. ─pp.28-29
나를 고용한 법무부는 나에게 불법 임금을 지불했고, 어떠한 세금 신고도 하지 않았다.
그건 정말이지 업보를 쌓는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아닌 게 아니라 정말 끔찍하다. 국가의 안전을 어깨에 짊어진 번역가, 지하실이나 차고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이 꾸미는 음모를 직접 번역해내는 사람들이 사회보장도 연금도 받지 못하는 불법 노동자라니! ─p.37
엄마가 입원하고부터, 나는 매달 노인 요양 병원에 지불해야 하는 3,200유로를 벌기 위해 마약 딜러들의 어이없는 대화를 엿듣고 번역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악착같이 일을 하면 번역도 돈이 되니까. (……) 하지만 머리가 멍할 정도로 가득 채워진다. 대부분 끔찍한 것들로. 경찰이나 법관들이 마주하기에 앞서 인간의 악행을 걸러내는 게 통번역사들의 일이다보니 그럴 수밖에. ─p.43
그의 꿈은 코트다쥐르에 보란 듯이 고급 자동차 정비소를 여는 것이었다. 그는 프랑스 사회가 그에게 기대하는 모든 것에 순응했다.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지도 않고, 신중하게 처신하며, 학업에 충실했다. 그래서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자동차 정비 기능사 자격증을 따냈다. 그렇게 피나는 노력을 했건만, 학업을 마치자마자 그가 정면으로 맞닥뜨린 것은 프랑스의 거대한 거짓말이었다. 일자리가 부족해 허덕이는, 하물며 아랍인이라면 손사래부터 치는 나라에서 인민의 마약에 불과한 우수한 학교 성적이 그에게 꿈을 이룰 수 있는 재정적 수단을 가져다줄 리는 만무했다. ─pp.56-57
병원이나 어린이집에서와 마찬가지로 요양 병원에서 일하는 돌봄 노동자들은 전부 흑인과 아랍인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찾아내기까지는 족히 일주일이 걸렸다. 세상의 모든 차별주의자들은 똑똑히 알아두길. 처음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숟가락으로 음식을 떠서 당신 입에 넣어주고 당신의 내밀한 곳을 씻어줄 사람은 바로 당신이 멸시하는 여자라는 걸! ─pp.72-73
여자들 대부분은 살아가며 그들의 어머니가 이상형으로 삼았던 모습에서 벗어나려고 끊임없이 애를 쓴다……. 그런데 나는 완전히 그 반대로 해왔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한발 더 나아가, 엄마가 이상으로 삼았던 여성의 이미지, 겁대가리 없는 유대인 여자의 이미지와 판박이처럼 닮아가고 있었다. ─p.136
내가 마약 도매상으로서 새로운 경력을 시작하는 사이, 내 형사 애인 필리프는 사법경찰 2국 마약 단속반 반장으로 부임했다.
"앞으로는 더 자주 볼 수 있을 거야.” 두 달 전, 그는 발령을 앞두고 기뻐하며 나에게 말했다.
나 역시 정말 잘됐다며 진심으로 기뻐했지만, 당시 나는 한낱 법정 통번역사에 지나지 않았고, 내 지하 창고에는 대마초 1.2톤이 없었다. ─p.137
"그런데 아줌마는 누구세요?”
웬 엄마 같은 아줌마랑 거래하게 되리라는 것만 제외하고는 모든 상황에 대비하고 있던 세 사람이 헛것이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p.150
자본주의 게임의 법칙은 나도 알고 그들도 안다. 강제로라도 존중받기를 원한다면 가장 야비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p.178
■ 저자소개
저자 : 안네로르 케르 Hannelore Cayre
1963년 프랑스 뇌이쉬르센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형사사건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변호사 겸 배우, 연출가, 시나리오 작가, 소설가이기도 한 그녀는 《국선변호사(Commis d'office)》 《대가의 그림들(Toiles de maitre)》 《XO 그라운드(Ground XO)》 《영화에서처럼(Comme au cinema)》 등의 소설을 발표했고, 다수의 영화에 참여했다. 2017년, 《파리의 대마초 여인(La Daronne)》으로 프랑스 추리소설 대상, LE POINT 유럽탐정소설상을 받았다.
역자 : 이상해
1960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한국외국어대학교와 동 대학원 불어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교, 릴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프랑스 문학과 번역을 가르치고 있다. 《어느 섬의 가능성》 《머큐리》 《시라노》 《낭만적 영혼과 꿈》 《되풀이》 《지옥 만세》 《11분》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악마와 미스 프랭》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여왕 측천무후》로 제2회 한국출판문화대상 번역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