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일본의 지도를 완성한 이노 다다타카
이 책은 인생의 전성기를 보내고 은퇴한 후 51세의 나이에 시작해 일본지도 제작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이노 다다타카伊能忠敬(1745~1818)의 이야기다.
그는 기울어가는 이노 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간 후 여러 사업에 재능을 발휘해 가문을 크게 일으켜 세웠다. 은퇴 후 어려서부터 좋아했던 천문학과 측량을 공부하고 1800년부터 1816년까지 17년에 걸쳐 일본의 전 국토를 측량하였다. 그리하여 최초로 일본의 정확한 형태를 밝힌 지도 ≪대일본연해여지전도≫가 완성되었다.
은퇴 이후에 일본지도 제작이라는 큰 위업을 이룬 그의 삶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100세 시대를 맞아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설계하려는 이들에게 그의 삶은 인생 2막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 목차
1장 북풍을 마주하다
고난의 소년 시절
생애의 스승들
북극성은 움직이고 있었다
큰 뜻을 여물린 감나무 한 그루
2장 자기의 사명에 ?본분?을 다하다
‘평생 실전’의 삶
지도자로서 훌륭한 위기관리 능력
3장 새로운 ?나?의 발견
그가 산 시대 - 다누마 정치
큰 뜻을 세우다
이노 집안의 지도 작성 전통
4장 사업가·지도자로 대성하다
‘현실’ 대응능력
덴메이 대기근을 극복하다
성심껏 ‘지혜’로 대응하다
찾아온 천운
그를 기다린 시대의 무대
5장 새로운 출발
‘자기완성’을 위한 결단
아내 노부의 죽음
‘생애 청춘’이라는 삶의 철학
스승도 인정한 ‘스이호 선생’
‘자오선의 수수께끼’를 풀다
6장 장대한 ?필생의 사업? 실현
일본 각지의 측량
체감을 통한 거리 확정
오슈 가도에서 에조치로
각지에서 벌어진 실랑이들
‘동일본 연해지도’ 완성
‘70년 생애 사업’의 완성
후기: 만년의 빛은 젊을 때부터 노력
해설: 제2 인생의 족적-스에쿠니 요시미末國善己
역자후기
연표
■ 출판사서평
일본의 지도를 완성한 이노 다다타카
이 책은 인생의 전성기를 보내고 은퇴한 후 51세의 나이에 시작해 일본지도 제작이라는 위업을 달성한 이노 다다타카伊能忠敬(1745~1818)의 이야기다.
그는 기울어가는 이노 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간 후 여러 사업에 재능을 발휘해 가문을 크게 일으켜 세웠다. 은퇴 후 어려서부터 좋아했던 천문학과 측량을 공부하고 1800년부터 1816년까지 17년에 걸쳐 일본의 전 국토를 측량하였다. 그리하여 최초로 일본의 정확한 형태를 밝힌 지도 ≪대일본연해여지전도≫가 완성되었다.
은퇴 이후에 일본지도 제작이라는 큰 위업을 이룬 그의 삶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100세 시대를 맞아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설계하려는 이들에게 그의 삶은 인생 2막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고난의 어린 시절
이노 다다타카는 1745년 1월 11일 고세키 고로자에몬小?五?左衛門 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출생지는 지금의 지바현千葉?이다. 다다타카의 아버지 리에몬利右衛門은 고세키 씨 집안이 아니라 진보神保 씨 집안 출신이었다. 진보 씨 집안도 마을의 지방관리인 쇼야庄屋, 촌락의 장 직책을 맡고 있었기에 리에몬은 고세키 씨 집안의 데릴사위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다다타카가 태어났을 때 그에게는 이미 두 명의 형이 있었다. 다다타카는 세 번째 아들이었다. 그리하여 어렸을 때는 셋째라는 의미로 산지로三次郞라 불렸다. 일곱 살 되던 해에 그는 어머니를 여의었다. 고세키 씨 집안에서는 딸이 죽자마자 리에몬을 내쫓으려 했다. 왜냐하면 리에몬은 소위 ‘샌님’ 또는 ‘책상물림’이라 육체노동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42세의 나이에 고세키 씨 집안을 나왔다. 이때 위의 아들 둘은 데리고 나왔지만 무슨 이유인지 산지로는 그곳에 남게 되었다. 그 후, 아버지 리에몬은 고세키 씨 집안에서 산지로의 생활을 풍문으로 듣고 몹시 가슴 아파했고 산지로가 11살 되던 해에 집으로 데려 왔다. 그런데 아버지를 따라 와 보니, 아버지는 이미 새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고 힘든 시간을 겪어 온 산지로를 새어머니는 따듯하게 대해주지 않았다. 참다못한 산지로는 집을 나와 친척 집을 전전했다. 소년 산지로는 그렇게 정처 없이 부평초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의 뛰어난 산술 능력과 바둑 실력
진보 씨 집안이 지방관리인 쇼야였던 탓에 연공年貢(세금으로 내는 곡물)의 과세 업무를 위해 관리들이 드나들었다. 관리들은 연공 납부를 위해 주판을 사용했는데 소년 산지로는 관리들이 계산하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했다. 한 관리가 계산 방법을 가르쳐주자, 산지로는 단번에 이해하고 익혔다. 관리들은 깜짝 놀라 히다치노쿠니常陸國, 지금의 이바라키 현(茨城?) 쓰치우라土浦의 절에 수학을 잘하는 스님에게 가서 배워보라고 권했다. 이에 산지로는 스님을 찾아가 반년 동안 수학을 배웠고 반년이 지난 후 산지로의 수학 실력이 스승을 뛰어넘어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산지로가 아버지에게 바둑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아버지는 무시하듯 거절했다. 아버지는 마치 산지로를 바보 취급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바둑을 배워 아버지를 이기고 말겠다고 결심했다. 바둑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바둑을 가르치던 아저씨가 이 일을 아버지에게 알렸다. 이에 아버지는 산지로를 다시 불러 직접 바둑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산지로의 바둑 실력은 빠른 속도로 늘었다. 아버지는 이 일로 산지로를 다시 보게 되었다.
데릴사위로 들어가 가문을 세우고 지도자로 인정받다
산지로는 18살 때 시와라佐原 지역의 이노 씨 집안 데릴사위로 가게 되었다. 사위가 된 다다타카는 가세가 기울어 있던 이노 씨 집안을 세우는 데 매진했다. 이노 가문의 당주가 된 다다타카는 새로운 가문에 친숙해지려고 이노 가문의 기록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측량에 소질이 있었던 3대 선조 가게토시景利가 그와 관련된 기록을 남겨놓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다타카는 이노 가문의 선조에게 깊은 존경심을 갖게 된다. 이것이 이노 가문의 부활과 마을의 촌장인 나누시明主로서 존경을 받게 된 발판이 되었다. 마을 촌장인 나누시로서 활약하는 중에 다다타카는 덴메이天明 기근을 맞게 되었다. 마을사람들이 곤궁에 빠지고, 또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외지 사람들이 마을로 몰려오는 위기에 직면했을 때, 자금과 물품을 효과적으로 운용하는 한편 지역 공동체의 힘을 빌려 이를 극복했다.
측량과 지도제작의 계기 및 역사적 배경
1778년에 34세가 된 다다타카는 아내 미치ミチ와 함께 일본의 북부 오슈?州 지방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는 이때 여행일기 ≪오슈기행?州紀行≫을 썼다. 이 여행을 통해 더욱 지리와 측량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은 지도와 달력에 대한 생각으로 구체화되어 갔다.
에도 막부가 정부 차원에서 지도 제작을 새로 하게 된 배경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당시 자신들이 쓰던 달력이 정확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지금의 홋카이도 인근으로 러시아가 남하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러시아는 표트르 대제 이후, ‘부동항 확보’를 목표로 지속적으로 남하하여 종종 북방의 섬들과 에조蝦夷(홋카이도) 등을 침범했다. 이때 북방의 방위는 일본의 국정과제로서 크게 대두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후 러시아의 남하는 계속되어 1797년에는 러시아인이 에토로후토?捉島 섬에 상륙하기도 했다.
측량활동과 지도제작
다다타카는 가업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은퇴하였다. 은퇴 후에 그가 공부에 뜻을 둔 것은 ‘천문학’과 ‘측량’이었다. 그는 자기보다 19살이나 아래인 막부의 천문방 관리 다카하시 요시토키高橋至時 문하에 들어가 천문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사비를 들여 기구들을 구입해 천문 연구에 매진했다.
이노 다다타카는 위도 1도의 거리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그는 홋카이도의 에조蝦夷 지역처럼 탁 트인 땅에서 실측하면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때 마침 막부가 북방으로 보낸 사람들이 측량을 하고 있어 막부의 에조치 책임자인 마쓰다이라 타다아키松平忠明에게 측량을 위한 청원서를 제출했다. 마쓰다이라는 일개 농민인 다다타카가 측량하는 것에 대해 미온적이었지만 결국 측량을 허가했다. 그래서 1800년 윤 4월 19일부터 10월 21일까지 제1차 에조치 측량이 이루어졌다. 이후 총 10차에 걸쳐 이루어진 측량 활동으로 이노 다다타카는 일본 각 지역의 지도를 작성했다. 1818년 74세 때 이노 다다타카는 쇠약해진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 채 4월 13일 에도 핫쵸보리八丁堀의 가메지마?島町에서 사망했다. 결국 일본 전역을 담은 ≪대일본연해여지전도大日本沿海輿地全?≫는 그의 사망 3년 후인 1821년에 완성되었다.
은퇴 후 측량활동에 나서 최초의 일본지도를 제작하다
다다타카는 천문학과 서구적 측량을 현실화하여 일본 최초의 실측 지도를 완성했다. 막부에 제출된 ≪이노즈伊能圖≫는 에도성江?城 모미지야마문고紅葉山文庫에 보관되어 일반인들은 접근할 수 없었다. 지도가 너무 상세해 국방상의 이유로 막부가 유포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1828년 모미지야마문고를 소관하던 다카하시 가게야스高橋景保가 나가사키 네덜란드 상관商館 소속 의사 지볼트Philipp Franz von Siebold에게 금서에 해당하는 ≪이노즈≫를 넘겨 준 일로 다카하시는 체포되어 이듬해 3월 옥사했다. 일본에서 추방당한 지볼트는 자국에 돌아와 1840년에 ≪이노즈≫를 네덜란드에서 메르카토르 도법Mercator projection으로 수정한 ≪일본인의 원도 및 천문관측에 근거한 일본국 지도日本人の原?および天文?測に基づいての日本??≫를 간행했다. 이 지도는 매우 정밀하여 당시 일부 유럽 지식인들이 일본의 높은 측량 기술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50세가 넘은 나이에 은퇴하여 최초로 일본 지도를 완성한 이노 다다타카의 삶은 어떻게 한 인간이 숙명을 극복하고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표상이라 할 수 있다.
■ 저자소개
저자 : 도몬 후유지
192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도청 등에서 관료로 일하다 1979년 퇴직후 작가로 변신했다. 국내에는 1993년 ‘신한종합연구소’를 통해 동명의 소설(원제: 小設 上杉鷹山)이 소개, 20여만부 이상 팔려나가면서 한국독자들과 인상적인 엇 대면을 하였다. 장기적 불황을 겪었던 일본에서도 기업경영자는 물론 일반인들에게 130만부 이상 팔려나가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지금까지도 꾸준히 읽히고 있는 ‘기업소설’의 고전(古典)이다. <불씨>가 인기를 끈 것은 정치권을 비롯해 많은 기업들에서 에도시대의 걸출한 지도자 우에스기 요잔의 ‘경영술’을 타산지석 삼았기 때문. 작가는 조직, 인간, 권력, 부패, 리더십 등 선굵은 주제를 역사속 인물을 통해 현대적 시각에서 재조명해 내어 국내의 넓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간경영>을 비롯해 <적을 경영하라-명장 17인의 선택과 결단의 리더십>, <오다 노부나가의 카리스마 경영>, <남자를 위한 논어-CEO를 위한 경영과 리더십의 교과서>, <사카모토 료마> 등의 작품이 있다.
역자 : 이용화
지리학을 공부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문화복장학원대학에서 복식(服飾)을 전공하였다. 서울전문학교와 이노패션연구원에서 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썼다. 한국방송통신대 대학원(일본언어문화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역서로 ≪타타르 말≫, ≪신기수와 조선통신사의 시대≫, ≪메이지의 도쿄≫, ≪에도의 도쿄≫, ≪맥주와 대포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