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이 책은 그리스 신화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와 서구 문명 담론을 분석하여 기존의 그리스신화 해설서와 차별화를 시도했다. 오늘날 헤라클레스와 같은 그리스 신화의 영웅은 승자독식의 상황 속에서 탄생하지만, 이 책은 이러한 영웅신화 비판을 통해 다수가 함께하는 공존의 서사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가를 화두로 삼았다.
이 글은 그리스신화를 서구문명과, 그리고 IMF사태 이후 신자유주의 사회와 엮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세 가지를 관통하는 것은 경쟁과 승자독식, 생태계의 파괴, 여성의 지위하락이다. 조셉 캠벨은 신화는 인간본성으로 들어가는 비밀의 문이라 하였고 칼 융은 무한한 인간 잠재력의 보고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리스신화는 이러한 원초적인 정의와는 다소 거리가 멀다. 문명의 신화로서 문명담론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 책은 그리스 신화를 주제나 코드로만 읽어왔던 기존의 방식과 완전히 다르게 문명담론 속에서 파악하는 최초의 시도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제우스가 아니라 헤라클레스이다. 헤라클레스를 서구문명의 대표적 영웅으로 보았을 때 서구문명에 대한 담론과 그리스신화를 연결하는 고리가 생긴다. 서구 문명의 역사를 정복의 역사라고 하는 말은 끌라스트르의 말대로 타자말살이나 타민족말살의 역사로 바꾸어 쓸 수 있다. 또한 대내적으로 남들보다 더 뛰어나게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게 되는 승자독식의 상황 속에서만 영웅이 탄생한다. 그건 다수가 억압받고 불평등해지는 상황이다. 영웅숭배는 승자가 되기를 갈망하고 승자의 편에서 사고하고자 하는, 빌헬름 라이히의 말대로 ‘억압을 욕망하는’ 대중심리가 그대로 투영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2000년 초반 전후로 왜 그리스신화 열풍이 그리 많이 불었을까? 서구적이고 현대적인 문화적 코드로 그리스신화를 안다는 것은 풍부한 지식과 교양을 의미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약탈적 신들을 어쩔 수 없는 인간 본성으로 추켜세웠던 <이윤기의 그리스로마신화>나 조악한 만화로 막장이야기에 골몰했던 <만화로 보는 그리스신화>가 백만 부에서 천만 부 정도까지 팔렸다. 이건 생존경쟁이 치열해지고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가 사회경제체제 전반을 지배하기 시작했던, 1997년 IMF사태 이후의 우리 사회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경쟁에서 이겨 승자가 되기를 갈망하는 바람을 부추기면서 승자들이 누릴 수 있는 권력이나 부를 인간본성의 당연한 권리로 여겨지도록 하는, 인간본성에 대한 이념적 투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된다.
1부 "영웅숭배: 억압을 욕망하다”에서는 지혜와 자유를 잃은 서사인 그리스신화가 한국사회에 불어 닥친 신자유주의적 문제와 어떻게 조응하는지, 공공성과 어긋나는 영웅의 병리성이 헤라클레스의 광기에 어떻게 투영되는지, ‘억압을 욕망하는’ 대중심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미래 감수성은 어떻게 다시 써야 하는지를 다룬다.
2부 "그리스신화와 호모 네칸스”에서는 여러 신화적 이야기를 통해 공존의 신화가 어떻게 불모의 사막의 신화로 바뀌었는지, 그 과정에서 문명의 수렵가/살해자 패러다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이 폭력적 살해의 문화가 희생제의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전쟁 속에서 어떻게 신에 대한 경배로 예찬되는지를 다룬다.
3부 "문명의 불안, 헤라클레스”에서는 거칠지만, 본격적인 문명 담론을 시도한다. 문화영웅 헤라클레스의 신화적 행적을 통해서 문명과 진보가 어떻게 불안과 죽음충동으로 드러나는지, 대조적인 두 문명 담론과 유발하라리와 데릭 젠슨을 통해 그 불안과 평화의 두 갈래 길이 어떠한지를 살펴보면서, 나아가 야만인을 기다리는 문명화과정에 반대하며 야만의 민주주의를 꿈꾸어본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신화 관련 책들을 쓰면서 살인, 파괴, 전쟁, 겁탈 들 시답지 않은 신화적 내용을 시(詩)답게 쓰려고 노력했다. 정의로 포장하여 준엄한 신들의 세계로 그리기도 하고 사랑이란 이름으로 낭만화시켜 만고불변의 에로스 문제로 다루려고 했다.
필자는 시답지 않은 신화의 세계를 일단 파열시켜보기로 하였다. 천상의 신들과 영웅들을 시답지 않게 속세에 불러온다는 것의 위험은 엄청나다. 그 위험에도 불구하고, 철학이나 신화, 미학 들 고상한 인문학의 뿌리는 바로 현실이라는 걸 상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학문의 세계에 발을 딛기는 하되, 뉴스, 심층기사, 위키피디아, 블로그, 댓글 들 저자거리에서 그리스신화를 소비하고 반응하는 생생한 소리를 철학과 심리학, 경제학 들과 접목시켰다. 학제 간의 연구일 뿐 아니라 상아탑과 현실 역시 융합적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스신화는 미래의 가치를 담보하는 공존의 신화는 아니다. 너무나도 분명하게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뉘어 있다. 신과 인간, 남자와 여자, 영웅과 그냥 사람들, 문명과 자연 들. 특히 여신이나 여자는 피해자가 되는 경우에만 서사의 대상이다. 영웅들은 신들이나 대토지소유자를 위해서 땅을 잃고 유랑하는 가여운 사람들을 내치거나 죽인다. 영웅의 폭력성과 그 숭배의 배반적 결과에만 치중하다 보니 그리스신화가 어찌 더 불안해졌다. 그리스신화를 통해 마주하게 된 이 불안을 필자 스스로 해소해야 했는데 이것이 가장 어려운 작업이었다. 현실은 비관적이지만 미래는 낙관적인, 비관적 낙관주의자의 모습으로 문명담론을 마주하고 싶었다.
우선, 가해자의 감수성을 벗어나 피해자의 감수성으로 일관되게 서사를 읽어내려야 했다. 제왕적 신들과 영웅들의 그늘에서 벗어나서 평범한 것들, 소수-되기의 감성과 행동에 대한 신뢰와 바람직한 서사가 필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들과 귀족, 부자들과 영웅들의 계급투쟁을 읽어내어야 했다. 신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다음으로, 호모 네칸스의 수렵가/살해자 패러다임을 물리치고 채집가/ 양육자 패러다임으로 인류사를 바라보는 것이다. 영웅숭배는 남자든 여자든 자신보다 약한 타자를 폭력과 착취의 합법적 표적으로 삼는다. 어머니는 아이보다 훨씬 경험, 자원, 힘에서 우월하지만 아이를 피지배적 위치에 두지 않는다. 이건 모성적 사유 덕택이다. 미래의 가치는 사회적 관계에서 지배가 아닌 책임과 권한을 가진 모성적 사유라 할 수 있다.
세 번째로, 우주로 나아가는 하늘의 편이 아니라 대지와 편을 먹고 지구에 안착하는 시선이 필요했다. 신화와 영웅의 문명담론에서 생태적 위치, 자연의 자리 들을 읽어내고자 했다. 이건 곧 서구와 비서구, 도시와 농촌 들을 문명과 야만 구도 속에 재배치하여 문명담론을 하는 작업이었다. 3부 중반부 이후 전개되는 이 문명담론은 필자가 가장 고심하여 적은 부분이기도 하다.
■ 목차
머리말 5
1부. 영웅숭배: 억압을 욕망하다
1장. 친밀한 적, 그리스신화 19
1. 친밀한 적, 그리스신화 19
2. 그리스로마신화 신드롬: 지혜와 자유를 잃은 서사 26
3. 청소년용, 만화로 보는 그리스로마신화 39
2장. 그리스신화,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를 만나다.
1. 그리스신화의 사랑과 여인의 일생 45
2. 개인주의의 귀결, 매춘과 가족의 해체 49
3. 전 지구적인 영웅적 개인주의 60
4. 승자독식과 신들의 세계 73
5. 돈과 권력, 욕정의 트라이앵글 85
6. 헤라클레스, 오이디푸스를 개시하다 94
3장. 영웅숭배: 억압을 욕망하다
1. 피해자의 감수성으로 101
2. 그리스신화, 남성지배의 칼의 문화 108
3. 영웅숭배: 억압을 욕망하다 125
4. 영웅의 병리성: 공공성과 어긋나다 156
4장. 헤라클레스의 광기와 전쟁신경증
1. 헤라클레스, 양가적 영웅 175
2. 죽음본능과 전쟁유전자 178
3. 헤라클레스의 폭력적 신성과 광기의 발작 182
4. 광기와 전쟁신경증 혹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193
5장. 미래 감수성, 다시 쓰다
1. 과거사 반성과 인식구조의 변화 205
2. 미래 감수성, 다시 쓰다 214
2부. 그리스신화와 호모 네칸스
1장. 애니미즘에서 호모 네칸스로 239
1. 애니미즘에서 불모와 사막의 신화로 240
2. 공존의 신화에서 호모 네칸스의 신화로 256
3. 문명의 수렵가/살해자 기원과 고대그리스 문명의 여명 300
4. 고대그리스 희생제의의 폭력성 329
2장. 호메로스, 전쟁과 인신공희
1. 호메로스시대 희생제의의 변화 345
2. 희생제의의 절차와 인신공희로서의 전쟁 357
3장. 공존을 꿈꾸는 나비의 날개 짓
1. 신자유주의의 희생제의, 치맥파티와 살 처분 373
2. 공존을 꿈꾸는 나비의 날개 짓 383
3부. 문명의 불안, 헤라클레스
1장. 서구화의 아이콘, 헤라클레스 399
1. 서구문명의 아이콘, 헤라클레스 399
2. 합리적 인간, 문화영웅 헤라클레스 410
2장. 문명의 불안과 죽음충동 425
1. 문명의 불안과 중독 425
2. 문명 속의 불만 그리고 죽음충동 444
3. 문명의 묵시록: 유발 하라리 vs 데릭 젠슨 467
3장. 문명화과정: 야만인을 기다리며
1. 문명화과정에 대해 483
2. 문명: 야만인을 기다리며 498
3. 다시 찾는 국가: 야만의 민주주의 516
참고문헌 527
■ 저자소개
저자 : 김봉률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서울대 사회교육과 졸업, 부산대 영문학 박사, 연구공간 수이제 대표.
저서로 <이안 와트의 소설발생론과 장르정치학>, <어두운 그리스> 가 있고, 고대그리스 문학관련 다수 논문들이 있으며, 인문경제 관련해서는 <호모 이코노미쿠스와 인성교육>, <한국경제의 불평등, 그 정당화 담론과 실제>, <4차산업혁명시대 전환경제교육과 메이커운동> 들 다수의 논문이 있다.
중고등학교와 대학 시절 존재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반공주의의 사상적 억압과 함께 여자콤플렉스와의 사투를 벌였다. 아주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였다. 당시 영문학계에 불던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이리저리 이론들을 섭렵하였다.
한 두 명의 사상가나 이론에 천착하기보다 소위 억견doxa를 바르게 세우는데 관심이 많다. 누구나 다 읽는 책으로, 누구나 흔히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을 전복시키는 건 정말 재밌다. 전복이라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너무나 소박하고 온순하고 모범적이다. 누구나 그렇게 살고 싶지만 극악하게, 남루하게, 무지하게 살도록 만드는 건 자본이다. 늦깎이로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에 남이 공부를 접을 나이에 공부의 재미를 보고 있다. 연구의 방향은 하나는 신화를 포함한 고대그리스 문학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본과 인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인문경제에 관한 것이다. 다음에 쓰고 싶은 책은 ‘하늘과 대지의 투쟁’에 관한 것이다. 물론 승자는 대지이자 흙이고 모성적 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