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법으로 읽는 문학, 문학으로 읽는 법
『나는 태양 때문에 그를 죽였다』에서는 세계적인 고전문학부터 현대문학까지 총 여덟 편의 작품 속에서 벌어지는 법적 이슈를 다뤘다. 작품을 법의 시각으로 읽고 분석하면서 자연스레 법률지식은 물론 법적 정의를 체득할 수 있게 했다.
문학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스토리)를 법률적 관점에서 읽고 재해석함으로써 작품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한다. 한마디로 법으로 읽는 문학, 문학으로 읽는 법이다. 이 방법은 이성과 감성을 조화시켜 독자를 정의의 길로 이끄는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또한 법학과 문학이 서로 어떻게 수용될 수 있을 것인가에 주목하였다. 인문학 전통의 부활을 추구하고 독자들에게 ‘법학은 사회과학이 아니라 인문학’이라는 인식의 대전환을 이루고자 출간되었다.
■ 목차
법문학이란 무엇인가
왜 시적 정의를 말하는가
시적 정의란 무엇인가
법적 정의 vs 시적 정의
시적(혹은 문학적) 정의는 어디를,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
법적 정의에서 시적 정의로
왕의 권리가 내 권리를 가로막을 수는 없어
-소포클레스, 『안티고네』(B.C. 441년)
양은 온순한 동물이지만 영국에서는 인간을 잡아먹는다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1516년)
그가 만약 계약을 지키지 않으면 심장을 가질 테다
-셰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1596년)
자비를 베풀 자에게는 자비를 베풀고, 아니 베풀 자에게는 아니 베푼다
-셰익스피어, 『자에는 자로』(1604년)
타락하는 것은 자유지만 나는 충분히 견딜 수 있도록 인간을 옳고 바르게 만들었다
-존 밀턴, 『실낙원』(1667년)
나는 태양 때문에 그를 죽였다
-알베르 카뮈, 『이방인』(1942년)
빅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조지 오웰, 『1984』(1949년)
수혈 거부와 강제, 무엇이 아동을 위한 최선의 이익인가
-이언 매큐언, 『칠드런 액트』(2014년)
■ 출판사서평
[머리말]
동서양에는 인류에게 영감과 감화를 안겨준 많은 고전이 있다. 그중에는 법학교육을 위한 텍스트로 활용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훌륭한 작품이 적지 않다. 그 작품을 법의 시각으로 읽고 분석하면 자연스레 법률지식은 물론 법적 정의를 체득할 수 있다. 이 방법은 문학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스토리)를 법률적 관점에서 읽고 재해석함으로써 작품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마디로 법으로 읽는 문학, 문학으로 읽는 법이다. 이 방법은 이성과 감성을 조화시켜 독자를 정의의 길로 이끄는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이번에 내는 『법으로 읽는 고전소설: 나는 태양 때문에 그를 죽였다』는 법문학에 관한 두 번째 결과물이다. 첫 번째 작업은 해방 이후 필화로 법정소송을 겪은 일곱 편의 시와 소설을 분석한 것으로 『법정에 선 문학』(한티재, 2016년)으로 결실을 맺었다. 법학자이자 시인-작가로서 나는 국가권력에 의해 목 잘린 문학작품과 저자의 권리를 복권시키고 싶었다. 출간 당시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공개되어 여러 언론사에서 이 책을 소개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였다.
법문학에 관한 두 번째 작업인 이 책은 유럽의 고전 가운데 일반 대중에게 잘 알려진 소설작품 여덟 편을 선정하여 법의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문학은 물론 법학에서도 이성뿐 아니라 감성도 인간이 가진 훌륭한 가치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이성과 감성이 조화된 상태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법학(혹은 법률)을 약자의 편에 서서 싸울 수 있는 학문(혹은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책 속으로]
약속(혹은 계약)은 지켜야 한다(pacta sunt servanda)!
이 말은 사적자치(私的自治)의 대원칙으로 근대 민법의 기본이 된 관념이다. 이 원칙을 문언 그대로 적용하면, 샤일록과 안토니오 사이에 체결된 "심장에서 가장 가까운 살 1파운드”라는 ‘인육계약’은 유효하다고 볼 수 있을까? 물론 오늘날에는 이러한 유형의 계약은 민법상 ‘공서양속의 원칙’에 위반되어 처음부터 무효이다. 하지만 작품 속 당시의 베니스에서는 계약무효에 관한 일반조항이 없었다. 결국 ‘현명한 법관’ 포셔가 "피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된다.”라며 법논리가 아닌 궤변에 가까운 논리로 판결을 내림으로써 가혹한 법의 집행을 피하게 된다. 포셔의 입을 빌리고 있지만 셰익스피어는 문학적 상상력이 법적 정의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 역설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비단 셰익스피어의 작품뿐 아니라 『주홍글씨』, 『레미제라블』, 『죄와 벌』, 『부활』 등 많은 작가의 작품에서 우리는 문학과 법(률)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문학작품에 대한 읽기를 통하여 법에 대한 이해를 보다 풍부하게 할 수 있지는 않을까? 문학과 법, 법과 문학은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p. 20, ‘법문학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두 번째 사례는 김귀옥 판사의 구두판결이다. 김 판사가 어느 비행청소년이 저지른 형사사건에 관한 재판을 하고 있었다. (중략) 김 판사는 이 청소년이 비행이나 범죄를 저지른 것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보호책임의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 청소년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은 우리 사회에도 있으므로 김 판사는 그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상처를 보듬는다.
최종 판결에 앞서 김 판사는 청소년을 일으켜 세운 상태에서 자신의 말을 따라 하게 했다.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 "세상에 혼자라도 두려울 게 없다.” 이렇게 함으로써 김 판사는 그 청소년으로 하여금 "이 세상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김 판사의 구두판결은 따뜻한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키게 만들었다.
-p. 67, ‘법적 정의 vs 시적 정의’ 중에서
안티고네와 크레온은 ‘거룩한 법’인 ‘신의 법’ 혹은 ‘하늘의 법’과 ‘왕의 법’이자 ‘국가의 법’인 ‘인간의 법’과 ‘땅의 법’, 그리고 ‘도시의 법’을 둘러싸고 격렬하게 대립하고 충돌한다. 칙령의 위반 여부에 대해 나누는 두 사람의 논쟁은 법철학적 시각에서 바라보면, 자연법과 실정법의 관계 혹은 정의란 무엇인가란 법학의 본질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p. 91, ‘왕의 권리가 내 권리를 가로막을 수는 없어’ 중에서
이 작품의 작중 인물인 안토니오는 기독교인 상업자본가이고, 샤일록은 유대인 금융자본가이다. 샤일록이 자신의 금융자본을 이용하여 돈이 필요한 안토니오에게 빌려줌으로써 경제적 이익을 얻는 것 자체가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이보다는 기독교인들의 유대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독한 인종차별적 시각이 비난받아야 한다. (중략)
기독교인 안토니오는 유대인 샤일록을 오신자(誤信者) 혹은 무자비한 개로 부르며, 침을 뱉고 발로 차기까지 한다. 개라고 부르며 그토록 무시하던 자신에게 안토니오가 돈을 빌려달라고 간청하고 있으니 샤일록이 "개가 돈이 있나요? 개가 삼천 다카트를/ 꿔 주는 게 가능하단 말입니까?”라고 대꾸하는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기독교인 안토니오는 "난 너를 다시 한번 그렇게 부르겠다./ 다시 한 번 침을 뱉고 차기도 하겠다.”라며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중략)
포셔의 입을 빌려 "저 상인의 살덩이 일 파운드 당신 거고,/ 이 법정은 그것을 수여하고 법은 준다.”라고 했지만 법과 법정은 유대인의 것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은 근대를 거쳐 현대에서도 계속되었다. 법과 법정은 기독교인의 기득권을 지키는 방패막이가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한 유대인의 대량학살인 홀로코스트를 막지도 못했다. 이 세상의 법과 법정에서 소외된 ‘그들’에게 과연 법적 정의는 있는가? 역사는 우리에게 이 질문에 대답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p. 178~180, ‘그가 만약 계약을 지키지 않으면 심장을 가질 테다’ 중에서
검사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효에 대한 고정관념과 통념을 정확히 파악하고 뫼르소의 행위를 사회의 가치와 도덕윤리로 비난하고 있다. (중략)
또한 그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청중의 관심을 끄는 방법도 알고 있다. 법정이 소극적 덕목인 관용보다는 고귀한 덕목인 정의에 따라 이 사건을 단죄해야 한다고 변론하여 뫼르소의 살인행위의 극악무도함을 부각시키고 있다. 마지막으로, 검사는 뫼르소가 평균 이상의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자신이 저지른 살인행위에 대해 사전에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강조한다. "똑똑하다”, "대답할 줄 안다”, "잘 알고 있다” 등을 "모르고 행동했다고 할 수 없다”, "후회하는 빛을 보이기라도 했던가?”, "범행을 뉘우치는 것 같지 않다”와 비교 대조하는 현란한 말솜씨와 변론 기법을 총동원하여 배심원들과 청중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검사의 변론은 로스쿨 학생들을 가르칠 때 사례로 활용해도 무방할 정도로 강한 호소력이 있다.
-p. 305, ‘나는 태양 때문에 그를 죽였다’ 중에서
"그가 죽는 순간까지도 우리는 일탈을 용납하지 못해.” 오브라이언의 이 말은 두려움을 넘어 섬뜩한 광기마저 느끼게 한다. 이중사고를 통한 인민들의 사상통제는 전체주의 국가와 독재정권이 즐겨 쓰는 수법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으니 바로 사상전향제도이다. (중략)
이 제도의 기원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6년 일제는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을 제정하여 조선에서 일본제국에 반대하는 일체의 사상을 탄압하고 사상범을 감시하였다. 이 법은 치안유지법 위반자 중 형의 집행이 종료되었다고 할지라도 지속적으로 보호관찰처분을 내릴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보호관찰을 통해 재범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 설정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독립투사들을 사상범으로 간주하고 조선독립운동을 사전에 억제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p. 338, ‘빅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중에서
매큐언은 『칠드런 액트』의 제목을 영국 「아동법(The Children Act)」에서 따왔다. 영국에서는 만 18세를 법적 성년으로 본다. 애덤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이다. 그는 18세 생일을 3개월 남겨두고 있어 아직 미성년자이다. 당장 수혈을 받지 않으면 그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애덤이 성년이 되기 전에는 그의 부모가 수혈 여부를 결정한다. 그의 부모도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서 종교상의 교리에 따라 아들의 수혈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중략)
이 소설은 ‘수혈 거부’라는 종교적 신념과 법적 판단을 둘러싸고, 과연 어떤 선택이 미성년자인 애덤을 위한 최선의 이익인가를 묻고 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칠드런 액트』를 법률적으로 재구성하여 사실관계와 판결요지로 정리하고, 법적 쟁점이 무엇인가에 대해 검토한다.
-p. 368, ‘수혈 거부와 강제, 무엇이 아동을 위한 최선의 이익인가’ 중에서
■ 저자소개
저자 : 채형복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교수/시인
학자는 꿈꾸는 사람이다. 만일 학자가 하늘의 반짝이는 별을 어린왕자가 사는 동화나라가 아니라 단지 기하학상 하나의 점이나 선으로만 본다면 우리의 현실은 암담할 것이다.
법은 곧 예술이라 믿는 법학자인 저자는 법적 정의가 아니라 시적 정의가 지배하는 사회를 꿈꾼다. 그리하여 법관이 시인이 되고, 시인이 법관이 되기를, 또한 판결문이 시가 되고, 시가 판결문이 되는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며 학문의 세계에 뛰어든 저자는 프랑스에서 유럽연합(EU)법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EU법과 국제인권법 등의 전공분야에서 백 편 이상의 논문과 스무 권 이상의 학술저서를 출간했다.
그러나 저자의 관심은 전문지식의 추구에만 머물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시인이다! 이 말을 모토로 『무 한 뼘 배추 두 뼘』(학이사, 2021)을 비롯해 여러 권의 시집과 법정필화사건을 다룬 『법정에 선 문학』(한티재, 2016)을 펴냈으며, 팔공산에서 텃밭을 가꾸며 시인-작가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