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50년 동안 신라 향가의 비밀을 추적해 온 한 향가 학자의
향가 백 년 전쟁을 끝내는 향가 완전 해독 선언문!
신라 향가 창작법으로 한국과 일본의 고대사가 진실의 시간과 마주하게 되었다.
황조가, 구지가, 해가, 지리가(智理歌)는 향가였다.
한국과 일본은 잘못 해독된 향가를 기초로 역사와 인문과 문화에 거짓의 탑을 세워 놓았다.
‘향가의 표기는 고대인의 말소리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라는 향가 해독법의 골간이 일제 강점기 일본인 소창진평(小倉進平) 경성제대 교수에 의해 제시되었다. 우리민족으로서 최초로 향가를 연구해낸 양주동 박사는 소창진평 교수의 이러한 해독법을 그대로 수용하였다. 일본인 교수의 해독법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향가 연구는 연구자들의 의도와는 달리 향가의 실체를 어둠 속에 파묻고 말았다.
향가의 실체를 평생에 걸쳐 쫓던 저자가 ‘향가 창작법’이라는 새로운 향가 해독 도구를 이 책에서 제시한다. 새로운 해독 도구는 ‘향가 문자는 표의문자로 기능한다’, ‘향가 문자는 한국어 어순법으로 나열되어 있다’, ‘향가의 문장은 노랫말, 청언(請言), 보언(報言)이라는 3가지 기능을 하는 문자들이 금줄처럼 꼬여 조립되어 있다’라는 법칙을 기본으로 한다.
향가 창작법으로 우리는 지금까지 알려진 향가 25편을 완독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향가 4편을 추가로 발견하게 하였으며, 한반도의 향가가 일본으로 도거(渡去)하여 일본 민족을 길러내는 모태 역할을 하였음을 규명해 냈다. ‘일본의 국서(國書)라고 일컬어지는 만엽집(萬葉集) 4516편,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의 운문들이 모두 향가였다’라는 사실까지 밝혀내었다.
향가 창작법은 실로 괴력을 가진 마법의 도구였다. 이로 인해 마침내 향가의 실체가 밝혀지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게 되었다. 일반 독자들께서는 천년 동안 쌓아 올린 거짓의 탑이 굉음과 함께 무너지는 것을 목도할 수 있게 되었고, 새로운 세대의 연구자들은 장엄한 향가의 세계로 들어가는 도구를 손에 쥐게 되었다.
이 책은 지난 1,000여 년 이래 향가 연구 성과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거대한 쓰나미 같은 충격파를 사회 각계에 던지고 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인문학적 상상력의 극치를 ‘김영회의 향가 3서’에서 보게 된다.
■ 목차
서언
1장 신라 향가 창작법
1. 보물을 감춘 자는 지도도 만든다
2. 향가의 설계도, 신라 향가 창작법
3. 향가문자는 표의문자(表意文字)이다
4. 향가에는 누언(陋言)이 사용되고 있다
5. 향가는 고대 한반도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6. 세도(世道)와 누언(陋言)으로 열근(劣根)한 사람들을 심원(深遠)의 세계로 이끌었다
7. 일부 문자는 중의적으로 기능한다 1
8. 일부 문자는 중의적으로 기능한다 2
9. 가언(歌言)과 청언(請言)과 보언(報言)의 발견
10. 노랫말(歌言)은 향가의 줄거리다
11. 청언(請言)은 청하는 문자다
12. 보언은 연극대본의 지문(地文)이다
13. 향가의 문장은 서기체(誓記體)로 표기되어 있다
14. 향가의 문장은 세 줄로 꼰 금줄과 같다
15. 파자법이 사용되고 있다
16. 생략형 한자가 사용되고 있다
17. 지(之)는 장례행렬을 뜻했다
18. 문장의 과감한 생략
19. 고유명사는 작품의 창작의도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20. 미화법(美化法)은 아름답게 꾸미는 법칙이다
21. 중구삭금(衆口#37984;金)과 군무(群舞)
22. 만엽집(萬葉集)과 삼대목(三代目)
23. 대구법(對句法)과 초신성(超新星)
24. 비교법, 그리고 《만엽집》의 원가(原歌)와 반가(反歌)
25. 향가의 정의, 신라 향가 창작법을 설계도로 하여 만들어진 작품
26. 새로운 향가 4편의 발견
27. 향가루트, 향가의 탄생과 소멸
28. 향가의 전통과 한글창제
2장 신라 향가 14편
1. 도솔가(兜率歌)
2. 도천수대비가(禱千手大悲歌)
3.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
4. 서동요(薯童謠)
5. 신충가(信忠歌)
6. 안민가(安民歌)
7. 우적가(遇賊歌)
8. 원왕생가(願往生歌)
9. 제망매가(祭亡妹歌)
10.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
11. 처용가(處容歌)
12. 풍요(風謠)
13. 헌화가(獻花歌)
14. 혜성가(彗星歌)
3장 고려 향가 11편
1. 광수공양가(廣修供養歌)
2. 보개회향가(普皆廻向歌)
3. 상수불학가(常隨佛學歌)
4. 수희공덕가(隨喜功德歌)
5. 예경제불가(禮敬諸佛歌)
6. 참회업장가(懺悔業障歌)
7. 청불주세가(請佛住世歌)
8. 청전법륜가(請轉法輪歌)
9. 총결무진가(總結無盡歌)
10. 칭찬여래가(稱讚如來歌)
11. 항순중생가(恒順衆生歌)
12. 신라 향가 창작법 〈보현십원가〉 적용 결과
4장 새로 발견된 향가 4편
1. 구지가(龜旨歌)
2. 지리가(智理歌)
3. 해가(海歌)
4. 황조가(黃鳥歌)
5장 만엽집(萬葉集) 향가 3편
1. <1번가>
2. <15번가>
3. <17번가>
6장 고사기(古事記) 향가 1편
1. <1번가>
7장 일본서기(日本書紀) 향가 3편
1. 효덕(孝德)천황 고립가(孤立歌)
2. 제명(齊明)천황 동요(童謠)
3. 중대형(中大兄)황자 매화가(梅花歌)
■ 출판사서평
책 속으로
신라 향가 창작법은 향가의 문자 전체를 분석하여 향가가 어떠한 원리하에서 만들어졌는지 그 법칙을 역추적해 낸 것이다.
신라 향가 14편에서 분석·종합해 낸 원리를 집대성해 ‘신라 향가 창작법’이라 이름하였다. 그리고 이를 고려 향가 11편과 《만엽집》의 일부인 621편, 《고사기》와 《일본서기》 운문 10여 편에 적용해 본 결과 이들 모두는 명백히 향가 창작법을 설계도로 하여 만들어진 작품으로 판명되었다.
본서에서 말하는 향가란 고구려 향가, 가야 향가, 신라 향가, 고려 향가, 일본 《만엽집》·《고사기》·《일본서기》의 운문 등 나라 불문 향가 창작법을 설계도로 하여 만들어진 모든 작품을 통칭한다.
16쪽, 향가의 설계도, 신라 향가 창작법
서기체는 한국인이 만든 최초의 우리 민족 고유의 문장 표기법이다. 훗날 1,000여년 후 조선시대에 들어 세종대왕께서 100% 우리말 표기가 가능한 한글을 창제하셨지만, 향가 창작자들이 세종대왕에 앞서 우리말의 문장표기법을 만들어 낸 것이다.
임신서기석의 이러한 표기법에 의해 향가문장이 표기되어 있었다.
이러한 서기체의 특징은 향가해독의 결정적 도구로 사용되었다.
서기체 표기법은 일개인이 만든 것이 아니라 국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사용되도록 강제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표기법을 기초로 하여 만들어진 향가는 창작되었다기보다 한글창제처럼 국가 권력에 의해 ‘창제’되고 사용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실로 위대한 탄생이었다. 필자는 그 국가 권력을 고조선일 것으로 추정한다. 상세한 내용은 후술한다.
필자는 임신서기석을 보물(보물 1411호)에 그치지 말고 마땅히 국보로 승격시켜야 한다고 본다. 우리 민족이 이루어 낸 언어학적 금자탑이기 때문이다.
53쪽, 향가의 문장은 서기체로 표기되어 있다
효성왕(재위 737~742)이 왕위에 오르기 전 어진 선비 신충(信忠)과 함께 궁정의 잣나무 아래에서 바둑을 두며 말하였다.
"훗날 내가 그대를 잊는다면 저 잣나무가 증거가 되어 (죽을) 것이다.”
그러자 신충이 일어나서 절을 하였다.
몇 달 뒤 효성왕이 즉위하여 공신들에게 상을 주면서 신충을 명단에 넣지 않았다. 신충이 원망하는 노래를 지어 이를 궁정의 잣나무에 붙여 두자 나무가 갑자기 누렇게 말라버렸다. 왕이 괴이하게 여겨 사람을 보내 살펴보게 하였더니 붙여져 있던 노래를 발견해 가져와 바쳤다.
왕이 크게 놀라 말하였다.
"정무가 복잡하고 바빠 가까이 지내던 사람을 잊을 뻔했구나.”
곧 바로 신충을 불러 벼슬을 주자 잣나무가 살아났다.
배경기록의 골자는 효성왕이 등극 이전 자신을 도왔던 신하를 중용하지 않아 왕이 어려움에 처했으나 뒤늦게 그를 중용함으로써 왕이 위기를 벗어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124쪽, 신충가
처용의 아내가 미인이어서 역신이 그녀를 흠모하였다. 역신이 사람으로 변신하여 밤중에 처용의 집으로 들어가 몰래 그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했다.
처용이 밖에서 집으로 들어와(入) 잠자리(寢)의 두 사람을 보았다. 그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다가(唱歌作舞) 물러났다. 창가작무(唱歌作舞), 이것이 향가가 공연되는 모습이다.
향가공연은 군무(群舞)와 독무(獨舞)가 있다.
군무는 구지봉에서의 <구지가>와 수로부인조의 <해가>에서 채택한 방식이고, 독무는 <처용가>에서 채택한 방식이다.
처용의 향가공연으로 천연두 역신이 제압되었다.
역신은 형체를 드러내고 처용 앞에 꿇어 앉아 말했다.
"공이 노여움을 내지 않으시니 감동하여 아름답게 여깁니다. 이후로는 공의 모습을 그린 그림만 보아도 그 집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처용가의 위력에 혼이 났으니 앞으로는 처용의 그림만 보아도 들어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격일 것이다.
또한 역신이 노여움을 나타내지 않으니 감동했다고 하였다. 이로 보아 처용 이전에는 천연두 퇴치의 방법은 노여움을 나타내는 방식, 즉 야만적 방법에 의해 역신을 퇴치하고자 했을 것이다.
174쪽, 처용가
일본인들은 이 작품을 표음문자 가설(만요가나)에 의해 풀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았듯이 표음문자 가설은 자체가 가진 문제점으로 인해 이를 활용한 일본연구자들의 해독은 심각한 오류를 빚고 말았다. 그 결과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국서인 《고사기》와 《일본서기》를 오독하게 되었다. 일본은 잘못 해독된 《만엽집》,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내용을 기초로 하여 역사와 인문과 문화의 탑을 세워 놓고 있다.
신라 향가 창작법으로 본 소잔오존(素盞嗚尊)은 어떠한 인물이었을까.
고유명사법에 따라 그의 이름을 풀어보면 소잔오존은 고기나 생선을 쓰지 않은 소찬(素)을 제찬으로 올리고 잔(盞)에 술을 따라 올리며(嗚) 비는 높은 사람(尊)이란 뜻이었다. 소잔오존은 천지귀신에 바치는 제사의례의 주재자였다. 그는 제정일치 시대의 지배자였던 것이다.
노래를 짓고 나서 소잔오존은 각마유를 궁을 관리하는 책임자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그의 딸 기도전희와 침소에서 교합을 갖고 자손을 퍼뜨린다.
소잔오존은 한반도 고천원에 살다가 신라 소시모리(曾尸茂利)를 경유하여 바다 너머 출운국으로 건너갔다.
일본 역사에 나오는 신대의 주인공들이 일본으로 도거하기 전 살았다는 고천원은 한반도 어디에 해당하는가. 일본의 고대 언어학자 마부치 가즈오(馬淵和夫) 교수는 경북 고령의 대가야라고 주장하고 있다.
319쪽, <1번가>
■ 저자소개
저자 : 김영회
어려서 한문서당 영사재(永思齋)에서 사숙하였고 서울고등학교, 서울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70년대 이래 향가를 연구해오고 있으며, 향가연구실 문학방(文學房)을 중심으로 다수의 문헌을 번역하였다.
동북아 고대문자 해독가 및 향가 만엽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대표저서로는 『향가루트』, 『천년 향가의 비밀』, 『일본만엽집은 향가였다』, 논문으로는 《신라향가 창작법 제시와 만엽집에의 의미》, 《찬기파랑사뇌가의 새로운 해독과 사뇌의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