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화영일록》은 서유구(徐有?, 1764~1845)가 수원 유수(水原留守)로 재직하던 1836년(헌종 2) 1월부터 1837년 12월까지 지방 통치 및 재정 운영에 관여하여 수행한 공무를 일기형식으로 서술한 기록이다. 서유구는 수원 유수로 부임하기 전 1833년(순조 33) 4월 10일부 터 1834년(순조 34) 12월 30일까지 전라도관찰사 겸 병마·수군절도사 도순찰사 전주부윤(全羅道觀察使兼兵馬水軍節度使都巡察使全州府尹)으로 21개월간 재임하면서 《완영일록(完營日錄)》이라는 8책의 업무일지를 남긴 바 있다. 《화영일록》은 《완영일록》과 비슷한 성격을 지닌 업무일지로서 《화영일록》에는 유수부의 업무를 보고하는 장계(狀啓)와 이에 관련하여 내려온 전교(傳敎) 등의 문서, 왕실의 중요한 날에 작성하여 바쳤던 각종 전문(箋文), 주변의 여러 군현과 부(府)및 주고받은 관문(關文) 과 문이(文移), 유수부 산하에 내린 감결(甘結)과 전령(傳令), 봄과 가을에 작성한 인사 고과인 포폄(褒貶) 등을 날짜별로 등재하여 《화영일록》을 편찬하였는데, 여기에는 서유구가 수원 유수로 임명되어 1837년(헌종 3년) 12월 3일 지경연사(知經筵事)로 낙점을 받고, 다시 11일에 전생서(典牲署) 제조(提調)로 임명이 되기까지 2년에서 19일이 모자라는 약 23개월간, 수원 유수로 재직하는 12월 12일까지의 공무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 목차
번역문 차례
일러두기
《화영일록(華營日錄)》 해제
화영일록(華營日錄) 권1 >>
병신년丙申年 1836년, 헌종憲宗 2년 1월| 병신년丙申年 1836년, 헌종憲宗 2년 2월| 병신년丙申年 1836년, 헌종憲宗 2년 3월| 병신년丙申年 1836년, 헌종憲宗 2년 4월| 병신년丙申年 1836년, 헌종憲宗 2년 5월| 병신년丙申年 1836년, 헌종 憲宗 2년 6월| 병신년丙申年 1836년, 헌종憲宗 2년 7월| 병신년丙申年 1836 년, 헌종憲宗 2년 8월| 병신년丙申年 1836년, 헌종憲宗 2년 9월| 병신년丙申年 1836년, 헌종憲宗 2년 10월| 병신년丙申年 1836년, 헌종憲宗 2년 11월| 병신년丙申年 1836년, 헌종憲宗 2년 12월
화영일록(華營日錄) 권2 >>
정유년丁酉年 1837년, 헌종憲宗 3년 1월| 정유년丁酉年 1837년, 헌종憲宗 3년 2월| 정유년丁酉年 1837년, 헌종憲宗 3년 3월| 정유년丁酉年 1837년, 헌종 憲宗 3년 4월| 정유년丁酉年 1837년, 헌종憲宗 3년 5월| 정유년丁酉年 1837 년, 헌종憲宗 3년 6월| 정유년丁酉年 1837년, 헌종憲宗 3년 7월| 정유년丁酉年 1837년, 헌종憲宗 3년 8월| 정유년丁酉年 1837년, 헌종憲宗 3년 9월| 정유년丁酉年 1837년, 헌종憲宗 3년 10월| 정유년丁酉年 1837년, 헌종憲宗 3년 11월| 정유년丁酉年 1837년, 헌종憲宗 3년 12월
참고문헌 서목
색인
표점원문 차례
華營日錄 卷1
병신년丙申年 1836년, 헌종憲宗 2년 1월| 병신년丙申年 1836년, 헌종憲宗 2년 2월| 병신년丙申年 1836년, 헌종憲宗 2년 3월| 병신년丙申年 1836년, 헌종憲宗 2년 4월| 병신년丙申年 1836년, 헌종憲宗 2년 5월| 병신년丙申年 1836년, 헌종 憲宗 2년 6월| 병신년丙申年 1836년, 헌종憲宗 2년 7월| 병신년丙申年 1836 년, 헌종憲宗 2년 8월| 병신년丙申年 1836년, 헌종憲宗 2년 9월| 병신년丙申年 1836년, 헌종憲宗 2년 10월| 병신년丙申年 1836년, 헌종憲宗 2년 11월| 병신년丙申年 1836년, 헌종憲宗 2년 12월
華營日錄 卷2
정유년丁酉年 1837년, 헌종憲宗 3년 1월| 정유년丁酉年 1837년, 헌종憲宗 3년 2월| 정유년丁酉年 1837년, 헌종憲宗 3년 3월| 정유년丁酉年 1837년, 헌종 憲宗 3년 4월| 정유년丁酉年 1837년, 헌종憲宗 3년 5월| 정유년丁酉年 1837 년, 헌종憲宗 3년 6월| 정유년丁酉年 1837년, 헌종憲宗 3년 7월| 정유년丁酉年 1837년, 헌종憲宗 3년 8월| 정유년丁酉年 1837년, 헌종憲宗 3년 9월| 정유년丁酉年 1837년, 헌종憲宗 3년 10월| 정유년丁酉年 1837년, 헌종憲宗 3년 11월| 정유년丁酉年 1837년, 헌종憲宗 3년 12월
■ 출판사서평
《화영일록》은 서유구(徐有?)가 수원 유수(水原留守)로 재직하던 1836년 1월부터 1837년 12월까지 약 23개월 간 지방 통치 및 재정 운영에 관여하여 수행한 공무를 일기형식으로 서술한 기록이다.
수원 유수(水原留守)는 정2품의 비변사(備邊司) 당상관(堂上官)에 해당하였다. 따라서 수원 유수인 서유구는 유수부(留守府)의 업무 뿐만 아니라 조정의 중대사에도 직접 참여해야 했다. 또한, 관원 중에서 학식과 문장이 탁월한 자들을 뽑아 홍문관(弘文館)이나 규장각(奎章閣)의 제학(提學)을 겸임하는 경우도 었는데, 서유구는 당시 규장각 제학을 겸임하고 있었다. 따라서 서유구는 크게 정2품 당상관의 지위에서 조정의 중대사에 참여하는 업무, 규장각 제학으로서 권강(勸講)과 진강(進講), 실록(實錄) 등의 편찬 사업에 참여하는 업무, 수원 유수로서 수원 지역을 관할하는 지방관의 업무까지 총 3가지의 지위를 수행하였다.
《화영일록》에는 규장각 제학으로서 실록 및 어제 편찬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서울에 출입한 기록, 편찬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규장각에 출입한 날짜, 임금의 권강과 진강에 참여한 기록 등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정2품 당상관으로서 헌종의 가례 등과 같은 조정의 중대사에 참여했던 기록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또한 수원 유수로서 가장 중요한 업무인 화령전과 현륭원을 봉심하고 관리한 기록, 소속 관리를 포폄하고 현지의 문사와 무사를 선발한 기록, 농사가 재정의 근본이었던 조선 시대 가장 중요했던 농형과 우택 장계를 때에 맞추어 올리고, 농사 짓는데 필요한 제언 등을 관리했던 기록들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조선 시대 공무 일기가 흔치 않은 상황에서 경기 지역의 상황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화영일록》은 자료적으로 매우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화영일록》은 수원 유수의 공식 업무와 공문서를 기록한 것으로 이 일기에 등재된 문서는 수원 유수로서의 공문서라 할 수 있으니, 이 기록을 검토함으로써 당시 통치 과정과 지방의 행정 및 사건을 자세하게 알 수 있다.
서유구는 수원 유수로 부임하기 전 21개월 동안 전라도 관찰사로 재임하며 《완영일록》이라는 공무일기를 남긴 바 있다. 《완영일록》은 서유구가 전라도 관찰사로 재임했던 동안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제주도를 포함 관할 56개 주 수령 등에게 왕명을 전달하고, 전라도의 상황을 왕에게 보고하는 장계를 날짜별로 필사하여 남겼다. 서유구의 이와 같은 두 건의 지방관으로서의 공무일기는 지방과 중앙과의 보고 문서 행이(行移) 절차와 중앙의 기록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당시 지방의 행정 실태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 저자소개
저자 : 서유구徐有? (1764~1845)
자는 준평(準平), 호는 풍석(楓石)이며 본관은 대구이다. 대제학 보만재 서명응의 손자이며, 이조판서 서호수의 아들이다. 영조14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규장각 초계문신으로 발탁된 후 좌부승지, 성균관 대사성, 홍문관 부제학을 거쳐 사헌부대사헌, 예문관대제학, 형조판서, 호조판서, 병조판서에 제수되었다가 늦은 나이에 전라도관찰사, 수원부 유수를 역임하였다.
대표적인 경화세족 가문에서 태어나 다양한 학문을 깊이 있게 연구했으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가학을 이어 특히 농학(農學)에 큰 업적을 남겼다. 가문의 개방적인 학문 기풍과 방대한 장서의 열람, 뛰어난 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다방면에 식견과 경험을 쌓았다. 젊은 시절 정조의 치세 때에는 규장각에서 많은 편찬 사업에 참여했고, 방폐기간 동안의 여러 경험을 기반으로 한 시대를 대표하는 학자로 성장했다.
서유구가 지은 16개의 주제를 지(志)로 하여, 113권으로 구성된《임원경제지》는 농업, 목축, 어업, 양잠, 상업 등의 생산 전반과 의학, 음식, 주거, 선비가 알아야 할 일상 실용지식 등의 생활 전반을 담은 방대한 양의 생활 백과전서이다.
그 밖의 저술로는 정조의 명으로 조선에서 출판한 도서의 목판을 조사한《누판고》와, 전라도관찰사로 재직할 때는 기민을 구제하기 위해 고구마 재배법을 기록한 《종저보》를 간행하였다. 이 밖에도 개인 문집으로 《풍석고협집》, 《금화지비집》, 《번계시고》, 《금화경독기》와 전라도관찰사와 수원유수시절의 업무일지인 《완영일록》과 《화영일록》이 전한다.
역자 : 박시현朴?炫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서 《강영과(江盈科)의 설도소설(雪濤小說) 연구》로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의 《소현동궁일기(昭顯東宮日記)》 번역에 참여하였고,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상택지(相宅志)〉·〈예규지(倪圭志)〉·〈이운지(怡雲志)〉·〈정조지(鼎俎志)〉·〈보양지(保養志)〉의 교정과 《완영일록(完營日錄)》, 《번계시고(樊溪詩稿)》, 《금화경독기(金華耕讀記)》의 교정교열을 맡았으며, 《풍석 서유구, 조선의 브리태니커를 펴내다》, 《허공에 기대선 여자 빙허각》, 《조선셰프 서유구》 시리즈를 편집했다. 옮긴 책으로는 《좌소산인문집(左蘇山人文集)》(공역, 2020)이 있다. 현재 풍석문화재단에 재직 중이다.
한민섭韓?燮
고려대학교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서명응(徐命膺) 일가의 박학(博學)과 총서(叢書)·유서(類書) 편찬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 도서관 한적실(漢籍室) 고서(古書) 전문사서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으로 《좌소산인문집(左蘇山人文集)》(공역, 2020), 《온계선생 북행록(溫溪先生 北行錄)》(탈초·국역, 2019), 《기백재일기(己百齋日記)》(탈초·국역, 2019), 《식물본초 식치편(食物本草 食治篇)》(공역, 2018), 《식료본초 식치편(食療本草 食治篇)》(공역, 201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