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예술에 관한 깊은 사유를 멋진 문장 속에 담는 일은 무척 매혹적이다. 그러나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사진 비평으로 분야를 한정한다면, 이런 작업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제프 다이어일 것이다. 존 버거의 심정적 후계자로 꼽히는 제프 다이어는 현대 사진 비평계에서 가장 높은 명성을 지닌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그러나 정작 그의 비평을 책으로 만나기는 힘들었다. 『지속의 순간들』 이후로 그의 작업은 칼럼이나 서문 등 특정 지면을 위해 작성된 글로만 진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바로 그 글들을 한데 모은 『인간과 사진』은 다이어의 새로운 비평을 만날 수 있는 반가운 책이다.
여기서 제프 다이어의 비평은 짧은 길이로 압축되면서 더욱 깊은 통찰력을 선보인다. 특히 각 사진가를 열 페이지 남짓한 분량으로 소개하는 1부에서는 해당 사진가의 정수를 파악하고 그 주제를 향해 직진하는 솜씨를 보여 준다. 다이어는 이 과정에서 예술과 사회 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펼쳐 놓지만, 동시에 유머를 선보일 기회도 절대 놓치지 않는다. 이처럼 비평가의 지성과 에세이스트의 여유가 공존하는 그의 비평은 좀처럼 보기 드문 개성을 갖추고 있다.
어떤 예술 작품과 예술가로부터 무엇을 얻어 낼 수 있는지, 우리가 작품을 감상하면서 무엇을 생각해 낼 수 있는지 궁금한 독자들은 이 책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상세이미지
■ 목차
서문
1부 - 만남들
외젠 아제의 파리
앨빈 랭던 코번의 『런던』과 『뉴욕』
아우구스트 잔더의 사람들
일제 빙의 가르보
헬렌 레빗의 거리들
비비언 마이어
일라이 와인버그의 사진 속 소년
로이 디커라바: 존 콜트레인, 벤 웹스터 그리고 엘빈 존스
낡은 전기의자: 앤디 워홀
데니스 호퍼
그들: 윌리엄 이글스턴의 흑백 사진
프레드 헤어조크
리 프리들랜더의 미국의 기념비들
베번 데이비스의 『1976년 로스앤젤레스』
루이지 기리
피터 미첼의 허수아비
니콜라스 닉슨: 브라운 자매
린 새빌과 한밤의 고고학
필립로르카 디코르시아의 마술
알렉스 웹
베이거스의 꿈의 시간: 프레드 시그먼의 모텔들
부정할 수 없는 스트루스
안드레아스 거스키
토마스 루프
프라부다 다스굽타의 『갈망』
포토저널리즘과 역사 회화: 게리 나이트
파벨 마리아 스메이칼의 『운명적 풍경』
크리스 돌리브라운의 『모퉁이들』
다야니타 싱: 이제 볼 수 있다
올리버 커티스: 『급반전』
톰 헌터: 계속되는 애가
페르난도 마키에이라와 밤의 마하
나폴리의 영혼과 육체
조이 스트라우스
매트 스튜어트: 그는 왜 매일 이것을 하는가
집에 머무르는 거리 사진가: 마이클 울프, 존 라프만, 더그 리카드
마이크 브로디: 『번영의 청소년기』
클로이 듀이 매슈스: 『새벽의 총성』
2부 - 노출들
프랑코 파제티: 2013년 2월 19일, 시리아 알레포
토마스 반 하우트리브: 2013년 11월 10일, 미국 필라델피아
제이슨 리드: 2014년 1월 17일, 호주 멜버른
불릿 마르케스: 2014년 1월 27일, 필리핀 마닐라
토마스 피터: 2014년 3월 5일, 우크라이나 페레발로예
마르코 주리카: 2014년 4월 22일,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니콜라이 도이치노프: 2014년 5월 4일, 불가리아 드라기노보
핀바 오라일리: 2014년 7월 24일, 가자 지구
킴 러드브룩: 2014년 9월 11일, 남아프리카 프리토리아
저스틴 설리번: 2014년 11월 26일, 미국 미주리, 델우드
3부 - 작가들
롤랑 바르트: 『밝은 방』
마이클 프리드: 『예술이 사랑한 사진』
존 버거: 『사진의 이해』
1부에서 언급된 사진가 명단
감사의 말
주
인용 도서 저작권 내역
■ 출판사서평
예술에 관한 깊은 사유를 멋진 문장 속에 담는 일은 무척 매혹적이다. 그러나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사진 비평으로 분야를 한정한다면, 이런 작업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제프 다이어일 것이다. 존 버거의 심정적 후계자로 꼽히는 제프 다이어는 현대 사진 비평계에서 가장 높은 명성을 지닌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그러나 정작 그의 비평을 책으로 만나기는 힘들었다. 『지속의 순간들』 이후로 그의 작업은 칼럼 등의 짧은 글로만 진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인간과 사진』은 바로 그 글들을 한데 모은 책이다. 1부는 다이어가 여러 매체에 기고한 칼럼 가운데 사진가에 관한 이야기를 모았으며, 2부는 한 장의 사진이 그 시대를 어떤 식으로 담고 있는가를 고찰한다. 그리고 3부는 사진에 관한 책들을 대상으로 한 ‘북 리뷰’다. 외젠 아제와 아우구스트 잔더 같은 옛 거장들부터 구글 어스로 찍힌 장면을 캡쳐한 ‘사진가’ 마이클 울프까지, 다이어는 매번 몇 장의 사진을 펼치고는 그 이미지들이 자신에게 불러일으킨 감흥을 자유롭게 풀어낸다.
오직 소설가만이 쓸 수 있는 비평
제프 다이어의 비평은 짧은 칼럼의 길이로 압축되면서 더욱 깊은 통찰력을 선보인다. 특히 각 사진가를 열 페이지 이하의 분량으로 소개하는 1부에서는 해당 사진가의 정수를 파악하고 그 주제를 향해 직진하는 솜씨를 보여 준다. 예를 들어, 인생의 면모로나 그가 찍은 사진으로나 역사상 가장 신비한 사진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외젠 아제에 관한 소론은 아제의 매력을 가장 잘 축약한 사례로 꼽을 수 있다. 다이어는 아제의 사진들이 주로 다루는 오브제와 촬영 기법 등을 간단히 설명한 뒤, 그런 외적인 요소들을 융합한 아제의 내면을 상상하고 그 모습을 묘사한다. 이 묘사는 재즈 뮤지션들에 관한 아름다운 책 『그러나 아름다운』을 쓴 다이어의 역량을 느끼게 한다. 이처럼 사진가에 관한 글이 학술적인 분석만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주제 즉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는 순간, 다이어는 독보적인 세계를 선보인다. 엄밀할 수도, 정확할 수도 없는 인간 내면을 문학적으로 묘사하면서 예술 비평의 담론도 놓치지 않는 그의 글쓰기는 다른 곳에서는 거의 만날 수 없는 성취를 보여 준다.
그러나 사진가를 향한 다이어의 ‘몰입’은 그 사진가의 내면에 관한 일종의 확신이 있을 때만 실행된다. 그는 감상적인 에세이스트처럼 모든 글에 자신의 감성을 투사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비비안 마이어에 관한 글은 아제에 관한 글의 반대편에 있다. 다이어는 그녀의 내면으로 들어가려 시도하기보다는 수수께끼적인 면모를 그대로 남겨 두는 것을 선택한다. 그러나 그럴 때조차 다이어는 냉정하게 수수께끼를 바라보는 쪽이 그 사진가와 그의 작업에 더욱 적합한 표현 방식임을 확신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피사체에 따라 다른 렌즈를 갈아 끼우듯 글의 스타일을 선택하는 솜씨는 문학을 기반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작가만이 보여 줄 수 있는 미덕이다. 이처럼 『인간과 사진』은 사진 그 자체의 존재론적인 의의보다는 사진을 찍고 보고 이해하는 ‘인간’들의 캐릭터를 추적하는 데 주력한다. 그러면서도 피상적인 에세이에 머물지 않고 비평에 필요한 지식과 냉정함을 꾸준히 유지한다. ‘소설가의 비평’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깊이 있는 사유가 개성 있는 스타일에 담기다
이렇게 독특한 개성을 지닌 다이어의 비평은 문장의 스타일에서도 드러난다. 한 권의 단행본으로서 안정적이고 통일감 있는 구성이 필요했던 『지속의 순간들』과 달리, 마음껏 자신의 작가적 개성을 드러낼 수 있었던 칼럼들을 모은 『인간과 사진』에서는 다이어 특유의 과감한 은유와 냉소적인 유머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멋과 즐거움’이 더욱 돋보이도록 역사와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레퍼런스를 끌어오는 그의 지성 또한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처럼 『인간과 사진』은 사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더욱 깊이 생각하고 싶은 독자는 물론, 예술 비평을 어떻게 개성 있게 선보일 수 있는지 궁금해 하는 독자(및 작가)에게 많은 선물을 가져다줄 것이다.
<추천사>
바르트가 언제나 자신의 소멸을 상기하고 고통스러워했던 바로 그곳에서, 이 책은 새로운 삶에 대한 섬세한 약속을 발견한다.
- 『월 스트리트 저널』
제프 다이어는 이미지와 단어 양쪽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루는 대가다.
- 『하퍼스』
저자는 이 매혹적이고 호기심 많은 에세이에서 이미지들과 사진가들을 면밀히 조사하고, 거기에 숨겨진 진실과 기이한 감각을 파헤친다.
- 『가디언』
<책 속으로>
아제가 촬영한 조각상들은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조각상들은 대체로 세상에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는 시간이 살아가고 있다. 조각상도 인간처럼 나이가 들지만 그 속도가 훨씬 느리다. 포클랜드 제도는 하루 만에 사계절을 다 경험할 수 있을 정도로 기후가 변덕스럽다고 한다. 조각상의 관점에서는 세계 어느 곳이든 1년이 거의 그런 느낌일 것이다. 그리고 세월은 불가피하게 조각상에게 통행비를 걷어 간다. 메리 매카시는 피렌체에 있는 어떤 조각상에 대해 "기후에 의해 손상되면서, 조각상은 자신이 견뎌 낸 요소들의 원시적 특징 중 일부를 띠게 되었다”고 썼다. 아제의 사진 속 파리의 조각상들의 경우, 이 문장을 현재 진행형으로 다시 써야 한다. 그들은 여전히 견디고 있다.
-32쪽
아버스는 이미 1960년에 마빈 이스라엘에게 쪽지를 휘갈겨 써서 보냈다. "누군가 나에게 아우구스트 잔더의 사진은 샘물 같다고 했지만, 오늘날 모든 사람이 그의 사진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놀라워 보인다. 마지막 단추의 깃털 장식이나 계급장까지 절대적이고 변함이 없다. 모두 돌연변이처럼 이상하고 아름다우면서 아무도 자신을 볼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가진 특별한 모습의 희생자다.” 아버스가 특유의 신선함과 천재적인 스타일로 (‘절대적이고 변함이 없는’) 잔더의 스타일을 고쳐서 곧바로 자신의 (‘돌연변이처럼 아름다운’) 독특한 목적에 미묘하게 가까운 것으로 변화시켰다는 점을 상기하자.
-48쪽
워홀의 실크 스크린 판화에는 시간순으로 흐르는 논리 대신 분절된 순간들이 연속으로 반복되고 있다. 그 순간은 심지어 순간이 아니라(순간은 시간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글쎄, 뭐라고 칭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말해 보자. 그는 더 많은 시간을 차지하기 위해 그 순간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시간 자체가 수축하는 것, 수축 포장에 더 가깝다. 동일한 순간이 아닌, 약간 새로운 순서로 크기와 색이 변화하는 순간들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리하여 그 사건은, 우리가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든 간에, 마취제 역할을 하는 미학적 영역에 온전히 존재하게 된다. 이디 세지윅을 두고 워홀의 연적으로 유명했던 한 인물이 나중에 말했듯이, 아무도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95쪽
이것은 워커 에반스에 관한 질문이다. 에반스가 촬영한 쓰러져 가는 판잣집, 버려진 차, 지역 특색을 보여 주는 간판 등은 그것들이 촬영되기 여러 해 전에도 똑같이 매력을 지니고 있었을까? 아니면 그런 것을 촬영하는 행위 자체가 여태껏 사람들이 거기서 의식하지 못했던 미적 차원을 드러내 주는 걸까? 어느 쪽이든 『미국의 사진들』이 출판되고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그 사진들이 전시된 1938년 이래로 그것은 미국의 모습이었고 우리가 미국에서 찾던 모습이었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이중의 창작이다. 관찰한 세계를 단순히 창작하는 것뿐만 아니라, 관찰한 결과를 판단할 용어와 기준을 창작하는 행위다. 그리고 그 모습은 단순히 미학적인 것만이 아니었다. "그 어떤 정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에반스의 반대되는 유명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대공황을 일으킨 더 큰 이념, 경제적·정치적 힘을 포착하고 묘사하고 반영했다.
-217쪽
어떤 면에서 그의 어머니의 죽음은 운 좋은 일이었다. 그 죽음은 바르트가 의심했던 것을 확신하게 해 주었다. 1977년 초에 라디오 인터뷰에서 그가 유려한 언변으로 인정했듯이, 사진에 대한 그의 매혹은 "아마도 죽음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아마도 그것은 시체 애호증의 기미가 보이는 흥미다. 죽었지만 살아 있기를 원하는 것으로 표현된 것에 대한 매혹 말이다.” 그해 연말이 되자 그의 어조는 변했다. 그는 다른 인터뷰 진행자에게 "사진을 진지한 수준에서 논의하려면 죽음과 관련해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이 목격자인 것은 사실이지만, 더는 그것이 아닌 것에 대한 목격자다.” 바로 이것이 고전적인 바르트다. 사건이나 사물의 본질에 대한 통찰력은 ―‘텍스트’는 그가 일관되게 선호한 용어였다― 그 자신의 확고한 개인적 경험에 대한 논평이다.
-399~400쪽
■ 저자소개
저자 : 제프 다이어(Geoff Dyer)
‘제프 다이어가 곧 장르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영국의 대표 작가. 사진, 재즈, 여행 등 한 작가가 다뤘다고 보기 어려운 다양한 소재를 소설, 에세이, 르포르타주 등 여러 장르에 담아내며 독창적인 글쓰기를 선보인다. 전 세계 독자들은 물론 무라카미 하루키, 알랭 드 보통 등 동시대 작가들에게도 사랑받는 작가다.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20여 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1992년 『그러나 아름다운』으로 서머싯 몸상, 2004년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로 W. H. 스미스 최우수여행도서상, 2006년 『지속의 순간들』로 국제사진센터 인피니티상, 2011년 『달리 말하면 인간의 조건Otherwise Known as the Human Condition』으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고 2009년에는 『지큐GQ』에서 선정한 올해의 작가로 뽑혔다.
의외로 그는 사진을 찍지도 않고, 심지어 카메라도 없는 상태에서 사진에 관한 글을 써 왔다. 그 결과 롤랑 바르트, 수전 손택, 존 버거 등 사진 비평으로 널리 알려진 대가들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비평 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역자 : 김유진
영국 런던에서 미술사 공부를 한 후, 미술관과 미술 관련 언론에서 일했다. 문화·예술과 관련하여 몇 권의 책을 편집했으며, 현재는 전문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미술부터 요리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미감에 관련한 외서를 국내에 소개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 마틴 게이퍼드의 『예술과 풍경』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