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서로 다른 시간에 걸쳐 형성된 변화의 계기들이 포개진 언어의 광장
문학의 동시대성을 포착하고 비평의 자리를 질문하는 강동호의 첫 비평집
『문학과사회』 편집동인이자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인 평론가 강동호의 첫 비평집 『지나간 시간들의 광장―문학의 동시대성과 비평의 정치』(문학과지성사, 2022)가 출간되었다.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데뷔한 이래 충실한 현장비평가로서 한국 문학의 활력을 높여온 강동호는 2020년 제21회 젊은평론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지나간 시간들의 광장』은 그간 저자가 비평 활동을 하며 골몰했던 문제의식과 탐구 방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한 ‘문학과 정치’ 문제에서부터 미래파, 문학주의, 윤리, 장편소설 개념 등에 대한 지난 10여 년간의 여러 논쟁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풍부한 철학, 미학, 사회학적 레퍼런스를 경유하여 엄밀한 논증을 통한 자신만의 입장과 관점을 보여주었던 강동호의 메타비평문이 다수 수록되었다. 젊은비평가상 수상작인 김애란론과 더불어 정지돈, 양선형 소설의 작품론을 읽으며 그가 문학작품에 접근하는 분석 방식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단순한 구조 분석이나 개념화를 경계하고 의미 과잉/과소 부여의 현상을 추동하는 근본 욕망을 문학사적 맥락에서 파악해, 논쟁의 본질에서 이탈하거나 오해된 개념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나에게 비평가는 주장하고 판단하고 예견하는 사람이기 전에 분석하는 사람이고, 그것을 위해 자신이 당면하고 있는 역사적 조건과 더불어 스스로가 수행하는 글쓰기의 존재 방식을 응시하는 사람이다. 물론 이러한 역사적 존재로서의 비평이 수행하는 자기 검토가 도덕적, 정치적 책임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평이 직면한 한계는 많은 경우 시대와 구조의 압력으로부터 비롯된 타율성의 산물이지만, 그것이 외부적 요인과 힘에 대한 비평 주체의 수동적 종속을 가리키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평의 비판은 해방과 자유의 가능성을 도출하기 위한 대화와 토론의 장소를 마련하려는 시도에 가까워져야 한다. 이 책의 제목 ‘지나간 시간들의 광장’은 비평이 실천하는 역사적 탐구가 현재의 한계를 드러내는 정치적 수행성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의도와 목표를 표현하고 있다. _「프롤로그」
〈1부 한계―문학, 이론, 정치〉에서는 문학과 비평에 관한 저자의 입장을 정리한 총론 격의 두 글이 실렸다. 「문학의 정치」에서 저자는 문학을 둘러싼 오래된 이념적 불화(내용/형식, 순수/참여, 예술성/정치성, 자율성/타율성 등)를 통해 문학과 현실을 서로 분리된 실체로 전제하고 양자택일을 강요했던 측면을 지적하며 이 대립 관계를 생산하는 기제를 ‘재현 체제’로 지칭하여 분석한다. 그는 재현 체제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창출되는 배제와 포섭의 권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박솔뫼의 소설을 범례 삼아 어떻게 평등한 재현의 감각을 회복하고 해방의 가능성을 모색할 것인지 논한다. 「문학의 한계 안에서의 이론」에서는 좀더 인문학 연구자적 고민에 밀착해 ‘이론’을 둘러싼 상반된 인식과 이를 향한 냉소와 회의를 두고 "문제는 이론과 전혀 무관하다고 간주되는 ‘이론의 바깥’의 환상으로 철수하는 것, 그리고 이론의 바깥 공간에서 이론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 악순환에 잘 뛰어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한국의 비평사에서 이러한 이론적 간극의 사례로서 "자신의 이론을 삶으로 입증하려는 타협을 모르는 일관성”을 가졌던 문학평론가 김현을 들어, "전망에 대한 회의와 그 회의에 대한 또 다른 회의 속에서 늘 방황”했던 그의 실천적 삶을 들여다본다.
〈2부 비판―문학주의, 권력, 통치성〉에서는 2010년대에 비화되었던 여러 문학적, 비평적 논쟁에 개입하여 쓴 글 여섯 편이 묶였다. ‘근대 문학 종언론’ 이래 문학과 비평에 드리워진 암담한 현실을 타개하고자, 더하여 어떠한 새로움을 명명하고 구분 짓고자 하는 욕망에 의해 충분히 검토되기 전에 활발하게 사용·논의되었던 개념들을 다각적으로 분석하며 자신만의 입장을 도출하고자 분투한다. ‘미래파’ ‘장편소설’ ‘문학권력’ ‘문학주의’ 등 다소 논쟁적인 개념이 고찰되지만 확언하기보다는 고민하고 우회하며 엄밀함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의 비평적 태도를 알게 된다. 1부가 ‘비평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더 가까웠다면, 2부는 이러한 비평 흐름을 검토함으로써 ‘비평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답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질문으로 나아가고자 한 노력 또한 볼 수 있다.
〈3부 동시대성―불능, 시대착오, 희망〉에서는 ‘동시대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읽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작품들이 분석된다. 3부 첫번째 글 「동시성의 비동시성」에서는 현재성과 구분되는 ‘동시대성’의 개념을 서술하고 한국 소설사에서 어떻게 이것이 발견될 수 있는지를 논한 뒤, 첨단의 모더니스트이자 그런 자신을 의심하고 회의했던 이상을 예로 들어 보였다. 그다음으로 1990년대를 열었던 시인이자 끝내 자신의 생은 그 시대에 닿지 못했던 기형도, 불능의 사태를 통해 비-주체라는 평등한 지위의 가능성을 보여준 양선형, 파괴될 수 없는 희망을 증언하는 김애란, 그리고 병존과 중첩의 방식으로 포개진 공간성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일치를 표현해내는 정지돈에 관한 분석이 이어진다.
지난 13여 년간의 글이 묶이다 보니 책 안에서도 조금씩 시각과 톤이 달라지지만, 그만큼 한 가지 관점이나 가치관에 정박하지 않고 생각의 틀을 유연하게 변화해온 강동호의 비평가적 지향이 돋보이는 것이 바로 『지나간 시간들의 광장』이다. 면밀하게 문학사의 흐름을 관찰하고, 조심스럽게 자신의 견해를 확장해가면서, 비평의 역할을 질문하고 스스로 답해보는 꾸준한 실천이 이 한 권에 오롯이 담겼다.
■ 목차
프롤로그
1부 한계―문학, 이론, 정치
문학의 정치―재현·잠재성·민주주의
1. 문학과 현실의 이분법
2. 흔들리지 않는 재현 체제
3. 경합하는 현실들의 형식: 미학과 정치적 올바름 사이의 간극
4. 문학의 통치성과 대의제 정치
5. 동시대 예술의 정치적 조건들
6. 문학의 민주주의: 잠재성의 광장
문학의 한계 안에서의 이론―이론을 위한 이론, 또는 비평의 위상학을 위한 단상들
1. 이론 바깥은 없다
2. 이론적인 것: 간극
3. 이론의 영원한 적
4. 문학이론과 문학의 이론
5. 장르 이론, 또는 장르라는 이념
6. 장르로서의 이론
7. 이론가 김현: 한계에 대한 사유
2부 비판―문학주의, 권력, 통치성
파괴된 꿈, 전망으로서의 비평―2000년대 미래파 담론 비판
1. 논쟁으로서의 2000년대
2. 근대 문학 종언론과 미래파 담론
3. 진정성의 종언과 전도된 역사철학
4. 장치로서의 내면
5. 절망의 불가능성: 비평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리얼리즘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장편소설 논쟁에 대한 비판적 시론(試論)
1. 장편소설을 둘러싼 개념적 혼란들
2. 위기론과 장편소설 담론의 역사적 근원
3. 리얼리즘의 숭고한 대상
4. 장편소설 대망론의 인식 구조
5. 장르론의 실용적 전회를 위하여
비평의 장소―표절사태와 문학권력론
1. 징후로서의 문학권력
2. 믿음의 형식으로서의 문학주의
3. 상호 텍스트성의 정치적 이념
4. 비평의 정치
비평의 시간―사적 대화 무단 인용 논란 ‘이후’의 비평
1. 비평의 요구
2. ‘이후’의 비평: ‘페미니즘?퀴어 비평’의 비평사적 의미
3. 세대론의 단절 인식과 목적론적 속도주의
4. 문학주의의 통치성과 장치로서의 비판
‘언표’로서의 내면―1990년대 문학사의 비판적 재구성을 위한 예비적 고찰들
1. 세기말의 풍경들
2. 1990년대 문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
3. 주체 없는 문학사 비판은 가능한가
4. 언표로서의 내면
‘문학주의’와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1990년대 『문학동네』의 자본주의 비판 분석
1. 시장 바깥은 없다: 배반당한 문학과 문학의 배반
2. 1990년대 비평의 자본주의 비판
3. 예술의 자율성과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
4. 새로운 문학주의 정신
3부 동시대성―불능, 시대착오, 희망
동시성의 비동시성
1. 이상한 것들의 역사
2. 한국 문학사와 지질학적 상상력
3. 좁은 원근법의 이중 망각
4. 회귀인가 귀환인가
5. 멀리서 읽기
6. 지정학적 상상력: 동시성의 비동시성
7. 현해탄을 (못) 건넌 나비―이상의 동시대성
희망의 원리―기형도의 어긋난 시간들
1. 두 얼굴의 기형도
2. 1980년대의 종언과 기형도 신화의 탄생
3. 지칠 때까지 희망을 꿈꾸기
4. 어긋난 시간: 기형도의 오지 않은 1990년대
불능의 시뮬라크르―양선형 소설의 정치적 프로토콜
1. 폐기된 고유명
2. 불능의 인간
3. 문체, 글쓰기-기계의 프로토콜
4. 글쓰기-기계의 정치학
5. 소설의 시뮬라크르
6. 소설의 정치: 오직 나아가는 것
희망의 이름―김애란 소설의 파괴 불가능한 것
1. 잊을 수 없는 말
2. 무지의 수인
3. 고민의 시차
4. 파괴 불가능한 것
동시대성의 증인들―정지돈의 『모든 것은 영원했다』가 증언하는 시간들
1. 보지 못한 것에 대한 비전
2. 불능을 증언하기
3. 시대착오anachronism
4. 동시대성의 구축
5. 무엇을 볼 것인가
6. Post Script
감사의 말
■ 저자소개
저자 : 강동호
문학평론가,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되며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