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으며,조선 민중의 삶 속에서 음식 문화는 어떻게 전개되어 왔을까?조선시대에 우리 민족은 이미 화려한 음식문화를 향유하고 있었다. 『성호사설』에는 "부유하거나 귀한 집에서는 하루에 일곱 차례 먹는데, 술과 고기가 넉넉하고 진수성찬이 가득하니, 하루에 소비하는 것으로 백 사람을 먹일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외국인의 시선에서 보아도 마찬가지였는데, 일본인이 쓴 『조선만화』에는 "신선로 속에 들어가는 국물은 소머리를 끓여서 만든 즙으로 이 속에 잣, 밤이 들어가기 때문에 맛이 있다. 신선로 냄비를 중심으로 4~5명이 둘러앉아서 먹는데, 건더기를 다 먹고 즙만 남으면 이번에는 조선 명물 우동을 넣어 끓여 먹는다. 신선로의 묘미는 이 우동을 끓여 먹는 데에 있다. 특히 기둥의 노와 냄비가 일체 되어 있는 것이 신선로의 특색이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또, 『조선의 실정』에서는 "조선인의 체격은 대개 우량하다. 키가 크고 골격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한족이 이러한 체질을 가지게 된 것은 일반의 풍습으로서 육식을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어육은 말할 필요도 없이 소고기, 돼지고기를 많이 먹고 있는데, 도저히 일본 민족에 비할 바가 아니며 옛날부터 조선의 집단지에는 어느 곳에도 상당의 도살장이 있다.”고 쓰여 있다. 종합해 보면, 조선시대 사람들은 하루 7끼 밥과 국수 등을 먹고, 화려한 모임 음식을 다양하게 즐겼으며, 1년 내내 고기를 즐겨 먹은 듯하다.『조선의 밥상』에서는 임진왜란 이후부터 구한말까지를 중심으로 조선시대 사람들이 요리해 먹었던 이런 다양한 음식들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동시에 음식 문화와 조선 민중의 삶에는 어떠한 관련이 있으며, 어떻게 음식 문화가 전개되어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폭넓게 예로 들어 기술하고 있다. 조선 민중의 범위는 위로는 왕에서부터 아래로는 서민까지 포함된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궁중의 음식 문화가 일반 서민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오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 상세이미지
■ 목차
머리말제1부 | 음식문화조선시대 음식문화 성립 배경음식을 만든 사람들궁중관청양반가중인밥상차림으로 본 신분사회계급에 따라 달리한 밥상차림밥상차림의 왜곡 및 변질정통적인 조선왕조의 수라상차림밥상차림의 문화음양오행사상에서 출발한 밥상차림음양오행사상에 따른 상차림과 시식, 맛과 색깔약선과 양념조선왕조의 궁중음식 변천사1일 7식을 먹은 조선의 상층부명나라 사신에게 제공한 소선 조반상최상층부의 안주와 행주잘못된 음주문화점심의 유래혼례음식문화처가살이혼에서 시집살이혼으로임진왜란 이후의 반친영혼현구고례제사음식문화기신제·시제(묘제)·다례불교와의 융합이란 측면에서 바라본 유교의 제사음식문화음양오행사상으로 본 제사음식문화외식문화장시의 발달과 국밥문화구한말의 술집문화요릿집 음식으로 전락한 궁중음식조선시대 여성들의 화전놀이제2부 | 찬품 각론조선시대 찬품 개괄필수식품이었던 쌀·소금·건어물·젓갈·콩·장명나라 황제에게 보낸 식품 선물 목록음식의 웃꾸미를 뜻한 말, 교태원나라 《거가필용》의 영향을 받은 육류 찬품주식류백반·팥물밥·유반·골동반·잡곡반죽국수상화와 만두탕류전철과 전골승기아탕 또는 승기악탕열구자탕·신설로·신선로면신설로사라져 버린 시식 - 잡탕과 골동갱궁중식 용봉탕관노들의 음식이었던 추어탕병갱과 떡국찜류정조대왕이 잡수신 황구찜숙종대왕이 잡수신 어묵 - 생선숙편구이류설야멱느르미·느름적·어음적·화양적병자·빈자·빙자떡·빈대떡밥반찬이었던 젓갈회와 조선 사람생선회를 사서 먹은 민중들화려했던 어채문화육회와 갑회버터를 만든 사람 - 수유치포와 절육, 하설다식과 황육다식나물정조대왕이 잡수신 나물 찬품잡채와 밀쌈에서 생겨난 지금의 구절판진채식인 콩나물과 숙주나물궁중의 청포채에서 유래된 탕평채초시에서 유래된 고초장고추가 보급되기 전 김치에 넣었던 천초유밀과매엽과약과유밀과와 당속떡어떤 종류의 떡을 먹었을까화전음청문화가양주문화참외를 즐겨 먹었던 조선사회시식과 절식 문화참고문헌 316
■ 출판사서평
밥상차림에서 보이는 신분과 문화조선시대에 밥상을 차린 사람들은 누구이며,그 재료는 어디에서 왔을까?조선 사회에서 신분제도란 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큰 기틀이었다. 그런 중요한 규율이니만큼 의식주에 있어 반상의 법도가 아주 엄격했고, 일상생활의 규범에서도 세세하게 정해진 방식이 있었다. 『조선의 밥상』은 궁중, 관청, 양반가, 중인가로 나누어 왕족, 양반, 중인의 밥상을 들여다보고, 그 작은 상 안에 담긴 법도와 문화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 설명한다.조선왕조에서는 18세기 말까지만 하더라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밥·국·반찬 모두를 포함해 왕과 왕족은 7기, 양반은 4기, 중인은 2기를 차려 먹었다. 그렇다면 ‘그 밥상을 차린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궁중에서 왕족들이 직접 밥상을 차리지 않았음은 확실하고, 궂은일은 죄다 솔거노비에게 맡기었을 종가의 귀한 마나님들이 부엌 아궁이에서 불을 때고 있는 모습도 상상하기 어렵거니와, 더 나아가 사무역을 통해 양반을 뛰어넘는 부를 축적하여 호사스러운 생활을 영위하던 잘사는 중인 집안의 여인들이 요리하는 모습도 잘 연상되지 않는다.지체 높은 집안의 안채 부엌에서는 한 달에 거의 한두 번 꼴로 있는 제사에 올릴 음식과 사랑채에 든 바깥손님을 위한 음식 및 일상 음식을 만들었다. 제사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떡 치는 일은 물론 남자종의 몫이었다. 그 외에 솔거노비 중 통지기라는 여자종은 물통이나 밥통을 지거나 찬거리를 사 오는 여자종이었고, 대개 밥을 하거나 장 담그고 반찬을 만드는 여자종을 식모라 불렀으며 반찬 만드는 여자종을 찬모라고도 하였다. 한편 관아와 역의 부엌에서는 주방장 격인 총책임자 칼자, 그 바로 아래 부주방장 격인 국을 끓이는 갱자를 필두로 생선을 잡아 오는 사람, 채소를 기르는 사람, 꿩을 잡아오는 사람들이 소속되어 각자 식재료 공수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한 부엌 안에서도 여러 인원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 ‘음식’인 만큼, 『조선의 밥상』에서는 단순히 조선시대 음식의 종류와 음식 문화를 넘어 ‘사람’에게까지 집중하고 있다.역사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음식문화조선시대 풍속 음식을 통해 그려지는 당시의 풍경과외식 문화 속에 녹아든 구한말 격변의 시대고려시대서부터 조선 초기까지 일반적으로 행해지던 처가살이혼이 언제부터 시집살이혼으로 정착되었을까? 사실 고려시대 때부터 시집살이혼으로 사회 관행을 변화시키려는 지도자들의 시도가 있긴 했다. 실제로 1349년 공민왕이 노국공주와 결혼할 때 북경에서 친영(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신부를 직접 맞이하는 의식)함으로써, 시집살이혼의 서막이 올랐다. 그러나 고려 말의 개혁조치는 더 이상 그 빛을 보지 못하다가 다음 정권으로 이행되었다. 고려왕조가 멸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선 것이다. 고구려 시대의 혼인은 물론 자유혼이었다. 이때 신랑집에서는 혼례 때 드는 잔치 비용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돼지와 술을 피로연에 소용되는 ‘이바지’용으로 신부집으로 보내는 것이 전부였으며, 그 이외의 폐물을 신부집에 보내는 것은 수치스러워했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후 가부장제가 강화되며 시집살이혼이 완벽하게 사회에 정착하게 되고, 혼례 과정에서 준비되는 음식들과 그 음식을 사용하는 관례가 변화하게 된다. 이 책에서는 그 변화한 관례들을 예식에 준비했던 음식과 더불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또 『조선의 밥상』에서는 조선시대의 외식 메뉴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는데, 그 묘사들이 무척 생생하고 자세하여 흥미롭게 다가온다. 장시에서 판매하는 국밥을 이야기하면서 서술된 그 앞에 꽂아 놓은 소머리와 밥을 먹으면 숙박까지 가능했던 주막의 풍경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생경하기까지 하다. 책에서는 구한말 궁중음식을 술안주로 선보인 요릿집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는데, 한일병합 이후 세워진 조선식 요릿집의 대표 격인 ‘명월관’을 그 예로 들고 있다. 명월관은 궁내부 주임관 및 전선사장으로 있으면서 어선과 향연을 맡아 궁중요리를 담당했던 안순환이 1909년 지금의 세종로 동아일보사 자리에서 문을 연 곳인데, 그해 관기 제도가 폐지되고 기생조합이 생겨남에 따라 일본 요릿집에 게이샤를 두듯이 자연스럽게 관기들이 명월관에 모여들었다. 이에 따라 궁중요리와 관기들이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조선의 밥상』은 이렇게 역사의 사건과 흐름 속에서 우리 음식문화의 변화 원인을 논리적으로 도출하여 자세한 예로써 설명하고 있다.조선의 밥상에 오른 음식들은 어떻게 전수되어 왔을까?다양한 음식의 종류와 함께 알아보는 조선시대의 음식문화앞서 이야기했듯이 지체 높은 집안의 여성들은 주로 집안의 음식을 관리 감독하는 역할을 하며 직접 손에 물을 묻히진 않았던 듯하다. 그렇다면 집안마다의 특색 있는 음식들과 가양주의 제조법은 어떻게 전수되어 왔을까?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조리서라 불리는 『음식지미방』은 다른 이름으로 ‘규곤시의방’이라고도 한다. 이는 ‘규방에 거처하는 부녀자가 쓴 책’이란 뜻이다. 이 외에도 『주식시의』나 『규합총서』 등과 같이 안주인이 쓴 필사본 조리서가 등장한 것은 며느리에게 술과 술안주를 포함한 집안 내력 음식에 대한 조리비법을 전하려는 시어머니들의 노력의 결과라 생각된다. 아울러 우리는 이와 같은 책을 통해 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즉, 비록 집안의 궂은일은 노비들이 도맡았지만 안주인 역시 조리법을 완전히 터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또 조선왕조에서는 나라에서 큰일을 치를 때 후세에 참고를 위하여 그 일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경과를 자세히 적어 책으로 남겼다. 그것이 바로 ‘의궤’인데, 『조선의 밥상』에서는 『원행을묘정리의궤』에 기록된 것을 토대로 조선시대 궁중 밥상(수라)에 올랐던 주식류, 탕류, 찜류, 구이류, 젓갈류, 나물류를 포함하여 회, 버터(수유), 포와 다식 같은 음식과 유밀과, 떡 등의 간식과 술, 계절별·절기별로 먹었던 풍류 가득한 음식까지 두루 소개하고 있다.지금까지 한국에 살면서 숱하게 먹어 온 자연스러운 식단부터, 단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생소한 음식까지 다양하게 담겨 있는 『조선의 밥상』.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우리 음식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가끔은 책에 기술된 시기와 절기에 따른 음식들의 의미를 곱씹으며 챙겨 먹어 보는 것으로 옛 풍류를 재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저자소개
저자 : 김상보1986년 한양대학교 이학박사 학위 취득1993~1994년 일본 국립민족학박물관 객원교수1978~2015년 대전보건대학교 교수현재 전통식생활문화연구소 소장한국의 식음료 문화를 평생에 걸쳐 연구한 학자로, 우리 문화를 대중에게 쉽게 알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문화체육관광부 우수 학술도서’에 다수의 저서가 선정되어 그 노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현재도 전통식생활문화연구소 소장으로서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주요저서《조선왕조 궁중의궤 음식문화》(1995) [우수학술도서]《한국의 음식생활문화사》(1997) [우수학술도서]《조선왕조 궁중음식》(2004)《다시보는 조선왕조 궁중음식》(2011)《약선으로 본 우리 전통음식의 영양과 조리》(2012)《우리 음식문화 이야기》(2013) [우수학술도서]《화폭에 담긴 한식》(2015)《조선왕실의 풍정연향》(2016)《한식의 도를 담다》(2017) [우수학술도서]《전통주 인문학》(2022) [우수출판콘텐츠] 외 다수\역서《원행을묘정리의궤》, 《찬품조》, 《어장과 식해의 연구》